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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감사합니다.

<쾌락독서>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by 도냥이

나는 “xx독서” 이름을 가진 책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대다수 내용이 가벼운 편이고 읽고 있으면 책을 더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 당장이라도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같다.


이런 마음을 마음 한편에 품고 살던 어느 날 나는 도서관 서재에서 <쾌락 독서>란 이름을 가진 책을 보았다. 독서만 들어가도 구미가 당기는 데 추가로 쾌락까지 있다니(!) 이런 상황에선 책을 집지 않고는 못 배긴다. 책을 집고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저자 확인이다. 문유석 판사, 전작인 <개인주의자 선언>을 즐겁게 읽은 경험이 있다.(합격) 책을 집어 읽기 시작한다.


최근 읽고 있는 자기 계발 서적과는 다르게 책이 술술 넘어간다. 딱딱한 법조문을 보는 판사님의 글이 왜 이리 말랑말랑하고 재밌는지 마치 입담 살벌한 동네 형이 SSUL 푸는 느낌이다. 특히 현학적인 책을 돌려 까는 솜씨가 압권이다.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속으로 깔깔거리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아래 내용은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실제 책의 재미의 반에 반도 안되니 자세한 솜씨는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죽은 글을 쓰려면 먼저 당신의 생생한 생각을 직접 쓰는 천박함을 피해야 한다. …… 내가 뭔 소릴 하고 있는지 적들에게 알리지 마라.


<쾌락독서>, 문유석

한편 그렇게 웃다가도 “보고 싶은 책만 보는 게 잘못이 아니었구나”하는 작지만 큰 깨달음도 얻었다.

나도 어렸을 적엔 재미로 책을 보았으나 대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재미보다는 주로 현실도피를 위함이었다. 나에게 독서는 학교 공부를 착실하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시학』,『일리아드』,『파우스트』같은 괜히 사람을 기죽게 하는 책들은 못 읽겠었다. 변명이 괜히 변명이겠는가. 다행히 판사님이 “네가 좋아하는 거 읽어” 라며 명쾌하게 무죄 판결을 내려주시니 당연히 무기징역을 예상하던 피고인인 나는 감격할 따름이다.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신기하게도 어려웠던 책들도 더 잘 읽혔고 글도 더 잘 써졌다. 더 읽고 더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음 하나 달라졌다고 이렇게 즐거워지는 걸 보면 역시 일은 자기가 재미있을 때 더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 같다.


이렇게 낄낄대며 웃다가도 아래 구절에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뒤에 숨어 있던 판사님이 판결 봉으로 머리를 한 대 세게 후려친다. 역시 판사님.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읽자마자 문장이 날 찌른다. 나 스스로를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 이야기가 아닌걸”하며 부정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안온한 기득권 안에 있을 때가 많았다. 아니 거의 전부였다. 기득권 밖으로 나가보기는 했을까. 그렇다고 이 안온함을 당장 벗어날 용기는 나에게 없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나의 뻔뻔스러움을 인지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훈계하는 후안무치한 짓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신작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책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생각들을 까놓고 펼쳐준다. 그리고 말한다. “이거 봐 이게 너의 남루한 생각이야” 그러면 나는 DJ DOC의 노래 가사로 답하겠다. “괜찮아 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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