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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없는 생각은 뿌리 없는 나무다

<마음의 미래>

by 도냥이

오늘은 싱큐베이션 서평 마감일이다. 하지만 읽어야 하는 페이지가 50쪽가량 남았고 아직 서평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늘 나는 “과연 내가 쓸 수 있을까?” 란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내 뇌는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상상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시간만 보낸다. 그러다 마감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팀원들은 모두 서평을 제출했고 나 혼자만 남은 상황이다. 팀장님은 서평을 제출하라고 압박한다. 이러한 사실이 또 나를 압박한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나는 서평을 제출하지 못한다. 패배감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이 상황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다. “끊었던 게임을 다시 해야 하나?”,“잠적을 타야 하나” 등등 나를 지옥의 급행열차에 태울 온갖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이럴 때만 나는 봉준호 감독이다.) 상상의 종점까지 오면 나는 곧 손목과 발목이 밧줄로 묶여 서평을 제출하지 못한 자들이 수감된다는 지하실로 끌려간다.

그러다 문득 현실세계로 돌아온 나는 스스로에게 “왜 이런 생각들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런 생각을 <마음의 미래>의 미치오 카쿠가 들었다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인간은 원래 그래



"의식의 주된 기능은 바깥세상의 모형을 만들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

인간은 최악의 미래 상황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한다.(지하실로 끌려간 나처럼)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불확실함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죽음과 불확실성이 상당히 가까웠던 과거로부터 우리 인간이 생존을 위한 결과물이다. 즉,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특징이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애초의 두 가지 한계를 품고 있다.


첫 번째는 스스로의 현재 상태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느끼는 것은 ‘두뇌가 빠진 틈새를 메우면서 대충 만들어낸 근사치’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현실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냥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현재 내 상태를 가지고 미래를 측정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점은 어떤 변인이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 모든 것을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로 엮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좌뇌가 관장한다.”


인간의 삶은 가까이는 부모, 형제, 친구 등 멀리는 태어난 국가, 시대 등 수많은 변인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변인들을 우리는 다 알기 힘들고 통제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이런 두 가지 한계가 있음에도 최악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그런대로 잘 작동했다. 그러나 현재로 오면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 왜냐하면 현재로 오면서 불확실성과 죽음과의 상관관계가 훨씬 줄었기 때문이다.(상하수도, 위생, 항생제 등으로) 그에 반비례하여 불확실성과 개인의 성장 간 상관관계는 훨씬 늘어났다. 이제는 성장을 위해서는 불확실함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한계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삶에서 어떤 방식을 취하는 게 유리할까?


나는 정재승 박사의 <열두 발자국>에서 나온 에피소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열두 발자국>에는 스파게티로 탑을 쌓는 게임이 나온다. 이 게임의 규칙은 스파게티와 마시멜로 테이프 실을 이용하여 제 한 시간 안에 가장 높은 탑을 쌓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게임에서 가장 높은 탑을 쌓은 집단은 CEO도 아니고 MBA 과정 대학원생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유치원생이었다. 유치원생이 가장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었던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1. 탑을 쌓을 수 있는 모델을 ‘빠르게’ 선정한다.

2. 모델대로 탑을 쌓는다.

3. 탑이 무너지면 1번으로 돌아가 성공할 때까지 1,2번을 반복한다.


이 방법의 핵심은 탑을 쌓을 수 있는 모델을 빠르게 정하고 무수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유치원생 집단은 가장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었다. 물론 인생은 높은 탑을 쌓는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둘 다 목표와 변수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보면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전략은 많은 변수들을 통제하여 완벽한 모델을 만드는 것보다는 조금은 불안정할지라도 빠르게 모델을 만들고 많은 시도와 실패를 통해 높은 탑을 쌓았던 유치원생의 전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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