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기술>
“아 컨디션 별론데 그냥 내일 해야겠다.” 왠지 익숙하면서도 친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을 하기 싫을 때 뱉는 말이다. 그리고 이 것은 내 입에서 자주 나왔던 말이기도 했다. 대학 시절 나는 게임과 유튜브를 달고 살았다. 컨디션 조절 혹은 기분전환이 그 이유였다. 물론 가끔씩 찾아오는 컨디션이 좋은 날도 게임하고 유튜브를 봤다. 그땐 유독 게임이 잘됐고 유튜브는 더욱 재밌었다.
그렇게 나는 ‘현재 컨디션’에 의지해 내 하루하루를 꾸려나갔다. 그 당시 나에겐 ‘기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꽤나 믿음직해 보였다. 가끔 유명한 사람들도 TV에 나와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세요. 내 안의 열정을 따르세요.”
크..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내 마음엔 한가득 뽕이 찼다. 그리고 더욱더 열심히 기분을 따랐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학기가 끝난 후 나에게 남은 것이라곤 D학점과 뻘겋게 충혈된 눈 그리고 게임 캐릭터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친구를 믿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하며 내 생활방식을 고수했었다. 그리고 2년쯤 지나서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게 되었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이 당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뭘 하는가’가 당신을 규정한다. 당신의 행동 말이다. <시작의 기술>
“헐” 이 문장을 보고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믿었던 그놈은 내 미래에 대해서 1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이 나라는 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생각한 대로 행동했었다. 배고프면 먹었고 졸리면 잤으며 게임하고 싶으면 했고 유튜브를 보고 싶으면 봤다. 그리고 이런 태도의 결과는 위와 같이 폭망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나처럼 사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성공한 사람들은 더욱더 그랬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다. 과연 스티븐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 때 매일매일이 행복했을까? 김연아가 트리플악셀을 수천수만 번 반복하면서 항상 즐거웠을까? 분명 정말 하기 싫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꿋꿋이 해냈고 결국엔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 우리도 위대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전에 당신께 한 가지 묻고 싶다.
저번 주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만큼 시간을 쏟았나?
전혀, 조금, 적당히, 보통, 많이가 아닌 숫자로 제시할 수 있는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위에서 당신이 뭘 하는가가 당신을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엔 커다란 함정 하나가 숨어있다. 그것은 우리는 우리가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니라고? 저번 주에 책을 얼마나 읽었는가? 이틀 전 점심 식사는? (책을 읽지 않아 자신 있게 0페이지를 외친다면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런 함정을 피해 갈 유용한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데일리 리포트를 쓰는 것이다. 리포트라니 실험실에서 써야 할 것 같이 거창하게 들리지만 아주 간단하다. 그냥 자신이 한 일을 시간대 별로 다 적는 것이다.(여기서 포인트는 한 일을 빠짐없이 다 적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습관이 되지 않아 힘들 것이다. 나도 처음 쓸 때는 매우 힘들었다. 꾸준히 쓰는 일은 더욱 힘들다. 그래도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 쓰다 보면 자신의 패턴이 보인다. 그리고 내 생각과 실제의 행동의 간극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견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즉, 어떤 행위를 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릴지 예측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것이 되고 안되고는 정말 엄청난 차이다. 비유하자면 이 것은 마치 캘린더에 스케줄을 적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예전 나는 일정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갑자기 누가 만나자고 해도 무조건 OK였다. 그러다 보니 약속이 겹치는 일이 빈번했다. 당연히 약속이 펑크 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 일을 수습하는데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마구 써댔다. 하지만 캘린더에 일정을 적기 시작한 후 이런 일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과 에너지로 내 삶에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시간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됐다. 예전 나는 시간이 무한 인양 행동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적으면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캘린더의 작은 네모칸 안에 어떤 것을 넣어야 하지?”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하게 된다.
예전 나에게 선택은 나쁜 것과 좋은 것 사이에서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묻는다면 선택은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닌 덜 좋은 것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답할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가치관이 생기기 시작한다. 쓰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한자라도 쓰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다음 말을 명심해라.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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