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일이다. 나는 졸업반이었고 나에게는 김재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재식이는 같은 과에다 나이도 같았다. 친해지기 최적의 조건에도 나와 재식이는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강의실에서 우연히 시선이 마주치면 한두 마디 말을 건네는 정도였다. 만약 ‘그 사건’이 없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나는 졸업 후 머지않아 재식이를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사건은 전공 시험 날 터졌다. 대학 시절 내게 공부란 ‘시험 하루 전에 하는 것’이었고 종종 이런 망상에 빠지곤 했다. “오늘 본 것만 다 나오면 B는 충분히 맞겠네” 물론 나의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고 성적표는 D, C 투성이었다.(그래서 마블을 별로 안 좋아하나?)
마침내 시험 날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시험지엔 모르는 문제로 가득했다. 나는 패색 짙은 모습으로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시험은 끝났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재식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재식이에게 다음과 같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 공부한 거 하나도 안 나왔네ㅋㅋㅋ” 그런데 재식이가 다음과 같이 반응하는 게 아닌가. “너는 시험 뭐 나올지 알았잖아” 분명히 짜증이 가득 섞인 반응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고 불편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그저 웃기만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시험을 본 과목의 교수와 내가 친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때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찝찝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냥 넘어가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일은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완전한 오판이었다.
며칠 후 다시 보게 된 재식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에게 명백히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렸다. “또 도서관 가냐?” “와 XX 이는 공부만 해” 별 내용은 없었지만 명백하게 악의가 담겨있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넘겼다.
대학을 온 후 처음으로 느낀 적대감에 몸이 얼어붙었다. 정도껏 하다가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안온함은 나를 궁지로 몰았다. 비아냥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고 빈도는 빈번해졌다. 대미지가 누적되자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그 친구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해 다닌다 해도 같은 수업을 듣는지라 가끔씩은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 정상생활이 어려웠다. 나중엔 그 친구를 피하기 위해 강의실에 늦게 들어가고 일찍 나왔다.
학교 안과 밖에서 언제 마주칠지 몰라 항상 긴장상태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그리고 그가 활동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그에 반비례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모든 일엔 끝은 있고 결국 나는 졸업을 하게 되면서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몇 년 후 이 힘들었던 기억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문장을 봤다.
최소한의 기준조차 없는 선량함과 허용, 양보는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에게 마음껏 나를 궁지로 몰아가도 좋다고 허락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그때 왜 상대방에게 나를 궁지로 몰도록 허락했어?” 이런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했다. “무서웠어 과거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 봐.”
사실 나는 초등학교 때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 아이에게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었다. 구타도 수시로 당했다. 다행히 그 아이가 전학을 가면서 괴롭힘은 끝이 났다. 하지만 그때의 상처는 고스란히 가진 채 나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방치했던 내 안 작은 아이는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다. 이제 나는 180이 넘는 키를 가진 건장한(?) 성인 남성이다. 하지만 잘 모르는 남자만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절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 누군가 근처에 접근하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배가 아파온다. 화장실 소변기에서 오줌을 눌 때도 주위에 누가 있으면 소변을 누지 못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킥복싱을 배워도 봤지만 어렸을 때 새겨진 상흔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이렇게 두려움에 떤 채로 살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내 것을 지킬 사람은 나뿐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고 있다. 심리학 책을 보면서 내 심리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도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 조용히 해달라고 말을 한다는 식이다. 물론 속으론 엄청나게 떨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어린아이를 가지고 있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겠지만 그것도 명백한 나이고 소중한 나이다. 그래도 가끔은 취약함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해 앞이 안 보인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되새긴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이 당신을 규정하는 것이 당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뭘 하는가’가 당신을 규정한다. 당신의 행동 말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이런 행동들이 쌓여 언젠가 어린아이와 화해할 순간을 말이다.
참고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