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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이버 블로그에서 맛집을 검색하지 않는 이유

<신뢰 이동>

by 도냥이


“아 어떻게 쓰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내가 한 생각이다. 이 책은 주석과 참고문헌까지 포함해 무려 4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감에도 책은 생각보다 잘 읽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을 글로 쓰는 과정이었다. 평소 신뢰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신뢰란 빨간 신호등 땐 건너지 않는다 정도였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텅 빈 하얀 한글 화면을 노려보지만 생각나는 건 없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벌써 서평 데드라인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도통 글은 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데드라인은 대단하다. 마감이 하루 전으로 다가오자 뇌가 낑낑대는 내 모습이 불쌍했는지 묻어두었던 한 생각을 던져줬다.


그 날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가 있었다. 여느 커플처럼 우리도 만나면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는다. 나는 이를 위해서 네이버 블로그를 자주 애용했다. OO맛집을 치고 블로그에 들어가면 손쉽게 볼 수 있는 친절한 설명과 사진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블로그에서 본 걸 기대하고 찾아간 식당 중 대부분은 기대 이하일 때가 많았다. 이런 일은 몇 번 반복되자 블로그에 대한 나의 신뢰도 바닥을 쳤다. 그리고 이제 나는 블로그에서 맛집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1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네이버 블로그는 나에게 불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나의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구글에 네이버 맛집 블로그를 치면 다음과 같은 게시물이 줄줄이 뜬다.


네이버 블로그 맛집.PNG


그런데 이렇게 떨어진 신뢰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단지 맛집 찾기가 좀 더 번거로워졌다 에 불과할까? 여기에 대한 힌트를 이 책에 '터스커기 연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터스커기 연구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터스커기 카운티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600명을 대상으로 미국 공중위생국에 의해 실시된 실험이다. 실험대상자들은 대부분 글을 읽지 못하는 흑인 농부로 그들은 척추 아래 부분에 바늘이 꽂혀 골수를 착출 당했고 매일 피를 뽑혔다. 그러다 사망에 이르면 그들의 시체는 해부되기까지 했다. 이들이 실험 대가로 받은 건 고작 무료 점심, 병원에 오가는 교통비, 무료 약 처방, 무료 장례식 지원비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나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의사로부터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들 600명 가운데 399명은 매독 환자였지만 나머지 201명은 매독에 걸리지 않는 통제군이었다. 이 가난한 농부들은 고통스러운 매독 증상을 고스란히 겪으며 실명, 청력 상실, 치매, 심장병, 마비를 거쳐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충격적인 건 이 연구의 진정한 목적이 매독 환자를 치료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매독의 장기 증상을 관찰해 매독을 치료하지 않을 경우 흑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백인과 동일한지를 알아보는 것이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이었다.


불행 중 다행히 진 헬러라는 기자에 의해 이 사건의 충격적인 전말이 드러났다. 그 결과 인간 연구 보호국이 설립되고 윤리 강령이 만들어졌고 연구 참가자를 적절히 보호하도록 요구하는 연방법도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십 년이 흐른 뒤에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 사건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했었다. 이렇게 터스커 기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한 연구를 통해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스탠퍼드 의과대학의 마르 셀러 알선과 테네시 대학교의 경제학자 매리앤 워너메이커는 미국 전역의 다양한 인구 및 건강조사 자료를 검토해서 터스커기 연구가 폭로된 후 수십 년 동안 흑인 남자들의 불신 수준이 높았다는 가설을 검증했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두 연구자는 45세 이상 흑인 남자의 기대 수명이 1.4년 감소했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45세 이상 흑인 남자와 백인 남자의 기대수명의 격의 원인 중 3분의 1 이상은 터스커기 실험 폭로의 여파에 있었다. 커스커기 연구의 폭로 여파는 엄청났다. 앨라배마주에 살지도 않고 터스커기 연구와 무관심한 사람들의 기대수명까지 감소한 것이다.


위 연구는 신뢰를 깨트리는 사건 하나가 한 세대 전체와 그 미래에 대해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수치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시 네이버 블로그로 돌아와 보자. 블로그 마케팅의 생태계는 다음과 같다. 식당들은 마케팅 업체에 돈을 주고 홍보를 맡긴다. 그러면 마케팅 업체는 네이버 블로거들에게 돈을 줘서 포스팅을 올리게 하거나 심지어는 블로그 자체를 사서 직접 홍보한다. 그리고 돈을 받은 블로거는 가보지도 않은 가게를 홍보한다. 이것을 순수하게 믿고 식당에 찾아간 사람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이클이 반복된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더 이상 네이버 블로그에서 식당을 찾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여파는 음식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 자체로 확장되고 머지않아 네이버란 플랫폼에 신뢰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는 곧 기업에 흥망과 직결된다. 신뢰를 잃은 기업은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는 마윈이 알리바바의 신뢰를 깎아먹은 영업사원과 그 비리를 눈감아 준 관계자를 전원 해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네이버는 이 심각성을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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