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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Nov 04. 2024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될거야.

최근에 마음에 품고 사는 말이 있다. 그건 "열심히 하지 않겠다"다. 아내에게 이 얘기를 하면 곧장 못마땅하다는 눈초리로 돌아온다. 


그녀는 무의식 신봉자다. 아내 논리에 따르면 평소 자주하는 생각은 무의식에 쌓인다. 이렇게 쌓인 생각들은 덩어리가 되어 우주의 기운을 부른다. 그리고 이것이 곧 현실이 된다. 즉,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우주가 여기에 응답해서 실제로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소리다.


나 역시 그녀 말이 백프로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감정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을 만든다는 말도 있으니깐. 하지만 내 본 뜻은 그 일을 최선을 다해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것을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에 더 가깝다. 


고등학교 과학실에서 잠깐 일했을 때 근무하던 부장님은 열심히 하겠다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열심히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잘 해야지" 아마 그는 열심히라는 것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서 이런 말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열심히 신봉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일 년 전만해도 그랬다. 시작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작은 누나는 지적 허영심이 있어 읽지도 않으면서 방에 여러 명저들을 두곤 했다. 홉스의 <리바이던>부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까지 다양한 책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그러다 그때 당시 유행했던 브레이언 트레시의 '개구리를 먹어라' 등 자기계발서들을 보게 됐다.


생각만 많게 만들던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명확했다.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고 무엇보다도 분명했다. 책에 나온대로만 살면 인생을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뽕에 차서 뭐든지 열심히 했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수행평가도 열심히 했고 시험도 열심히 봤다. 이런 내 태도에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런 소리에 내 어깨는 더욱더 올라갔다.


그런데 왠걸 성적은 이런 열정에 못미쳤다. 그 당시 전교 오십등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이 책대로 열심히 해봤으나 성적향상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롤을 열심히 했고 대학 공부를 열심히 해보려했지만 잘 안 됐다.


이것에 대한 실망감은 나를 향했다. 내 역량 부족 때문에 결과가 안 나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일 년 전에 문득 깨달았다. 내가 열심히 하려고해서 잘한 적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오히려 이것보다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했을 때 성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낸 결과물 중 스스로 만족했던 때는 이런 열심히라는 마음을 품지 않았을 때였다. 브런치에서도 꾸준히 쓰다보니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반면 열심히 하려고 하면 몸에 긴장이 되어 실력 발휘를 못했다.


인간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본 책 <가난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란 책에서는 가난은 미래를 위한 결정능력을 감퇴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문제 보다 사사로운 문제들에 에너지를 많이 뺏기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능력을 고민할 에너지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이제는 어떤 것을 할 때 열심히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열심히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데 더욱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예로 들어 저녁 10시 이후에는 전자기기를 보지 않는다고 결심했다. 예전 같으면 내가 보면 사람이 아니다등 의지력을 불태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내 방 화이트 보드란에 저녁 10시 이후로는 전자기기를 보지 않겠다고 적는다. 나 자신이 눈에 보임과 동시에 아내에게 공표하는 효과다. 그리고 핸드폰 차단어플을 설치하여 저녁 12시 이후에는 유튜브나 네이버같은 어플들이 켜지지 않도록 설정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의지를 불태우지 않는다. 그보다 내가 해야할 일에 대해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대로 차근차근 처리한다. 이런 행동들은 열심히 해야지하면서 심취해서 하는 것보다는 감흥이 덜하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더욱 크다.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열정도 필요하지만 이것을 지속할 수 있는 냉정이 필수적이다. 본인이 어떤일을 할 때 의지를 불사르는 에너지만큼이이나 어떤 상황에서 내가 열심히 할 수 있고 어떻게 환경을 설정할 것인지를 좀 더 고민하는 게 실질적으로 그 일을 꾸준히 오래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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