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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도 남기는데 왜 책은 남기면 안 될까

by 도냥이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미처 다 읽지 못한 책들이 생긴다. 이런 책들을 볼 때면 자신과 놀아달라며 끈질기게 칭얼거리는 조카 생각이 난다. 무시하고 내 할 일을 하자니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고 놀아주자니 더욱 재미난 것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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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의 저자는 배달의 민족 대표 김봉진 씨다. 성공한 사업가의 책인지라 읽기도 전부터 꼰대 아저씨가 훈계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의외로 친근한 문체 덕에 마치 동네 형의 능수능란한 썰을 듣는 느낌이었다. 이런 대표 밑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보 독서가로서 여러 어려움을 가지고 있던 내게는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아래 멘트는 압권이었다.


많은 분들이 다 읽지 않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낭비한 것처럼 느끼는데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시켜서 두세 모금 마시고 나올 때 죄책감까지 느끼지는 않잖아요.


맞다. 심지어 나는 식당에서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비싼 세트메뉴를 남겨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아 욕 심버렸네 다음엔 단품 시켜야지”하는 정도다. 그런데도 내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해 죄책감을 가진 이유는 책을 단순한 상품 이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근처 서점만 가도 금방 알 수 있다. 책도 엄연히 가격표가 붙어있는 하나의 상품이다. 거기다 현재는 과거 때와 다르게 책이 많다. 그것도 아주.


저자는 이런 막연한 책의 우상화가 도리어 책의 진정한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종이와 잉크가 아닌 책 안에 들어 있는 저자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가 쓴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읽어가는 것이에요.


내게는 저자의 생각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예전 <책만 읽는 바보>에서 주인공인 이덕무가 책을 절실하게 읽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아 나 또한 그렇게 해보려 했으나 금방 난관에 부딪혔다. 우리나라 소설들은 좀 나았지만 외국책 같은 경우는 인물 이름이나 지명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것들을 읽어내느라 진이 빠져서 정작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지 못했었다.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자는 관점을 가지니 책을 읽을 때 전보다 좀 더 수월해졌다. 특히나 이해가 되지 않은 외국 사례들을 볼 땐 예전 같으면 하나하나 꼼꼼하게 봤을 텐데 지금은 숙숙 넘긴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파악하려 한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활자를 보는 게 아니라 저자의 생각과 그것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을 읽는 행위다.


Photo by Alla Het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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