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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보니 막내

책 <오리지널스>를 보고

by 도냥이

나는 막내다. 내 위로는 다섯, 일곱 살 많은 누나가 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주위에서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예쁨 많이 받았겠네.” 이런 말을 들으면 난 겉으론 웃으며 속으론 과연 이쁨만 받았을까요?”라고 생각한다. 막내로 산다는 건 꽤나 고달픈 일이다. 배부른 소리 한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막내로 사는 것에 대한 애로사항은 분명 존재한다. “그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건 다른 법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관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감정적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되고, 상황을 타개할 방책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 문장을 보고 이거 딱 작은누나네” 하고 생각했다.(다행히 누나는 블로그를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누나는 시답지 않은 이유로 걸핏하면 나에게 화를 냈다. “화장실을 더럽게 쓴다.”, “컴퓨터 소리가 시끄럽다.”, "문을 세게 닫는다." 등이 그 이유였다. 어떤 날은 이런 소리를 피하기 위해 누나 방 쪽 화장실을 안 써도 봤다. 그럼에도 똑같은 민원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왜냐하면 누나는 도합 15단이 넘는 유단자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주먹은 말보다 가까웠다. 그런데 다섯 번은 그러다가도 한 번쯤은 갑자기 음식을 해준다거나 선물을 주는 등 나에게 잘해줬다.


학창 시절 누나와의 관계는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24시간 눈치 보기 전략을 썼다. 전략은 세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작은누나가 어디 있는지 수색한다. 둘째 누나 발견 시 얼굴과 행동을 보고 기분 상태를 기민하게 파악한다. 셋째 만약 누나와 일대일 대면하는 비상상황엔 누나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제는 되도록 피한다.


이런 전략은 나름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큰 부작용이 하나 있었다.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누나와 함께 있으면 조금만 지나도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전략을 내 모든 인간관계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24시간 내내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사람과 같이 있는 게 피곤했다. 결국 나는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다른 사람의 연락을 피하고 하지도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유지가 안 됐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막내로 태어난 것은 나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나는 막내라는 점 때문에 피해만 입었을까?”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나는 막내로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우리 아버지는 자식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압박을 주신다. 그런데 방식이 독특하다. 말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대신 방 청소를 해주시고 커피를 타다 주신다. 아무 말 없이 잘해주신다. 이렇게만 보면 좋을 것 같지만 자식으로서 느끼는 심적 압박감은 상당하다.(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결과의 논리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경우,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구실을 늘 찾게 된다. 한편 적절성의 논리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든다. 어떤 행동을 해야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지는 덜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면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된다.”


누나는 이런 아버지 기대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괜찮다고 생각되는 직업을 선택했다. 결과의 논리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압박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적절성의 논리를 작동할 수 있었다. 내가 얻을 결과보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절에서 1년 정도 살았다. 공항에서 1년간 일했다. 홈플러스에도 마이크를 잡고 고기를 팔았다. 전국을 2달간 아무 생각 없이 떠돌았다. 심지어 여행 가이드 사진사도 해봤다. 그리고 지금은 독서클럽도 나간다. 이렇게 나열하다 보니 막내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심지어 서평의 글감도 줬다!) 나는 막내이기 때문에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로 인한 혜택을 더 많이 받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받은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잃은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원한이나 회한을 품고 사는 인생보다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삶이 언제나 더 재미있다.
책 <행복의 조건>, 조지 베일런트


Image by Aravind kuma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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