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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Mar 28. 2023

게임 중독자 남편 이야기

중독을 다른 중독으로 만들기

  난 게임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환세취호전, 환상서유기, 삼국지 조조전 등 무수히 많은 게임을 섭렵해 왔고 요즘엔 위쳐 3, 엘든링 같은 스팀 명작 게임도 즐겼다. PC방 점유율 1위에 빛나는 롤도 하루에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서너 시간가량한다. 이렇듯 내 인생에서 게임을 빼놓고 나를 말할 순 없다.    


 

참고로 내 교대근무 패턴상 주 5일 일하는 다른 직장인에 비하여 평일에도 쉬는 날이 종종 있다. 신혼 초에는 이렇게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해서 게임을 붙잡으면 와이프가 퇴근하는 저녁 일곱 시까지 계속 게임하곤 했다.     



그리고 와이프가 자러 들어가면 다시금 새벽까지 게임했다. 다음 날도 회사에 안 가는 날이니 오후 2~3시 넘어 느지막이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끼니도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대강 때운다. 



한 여섯일곱 시간 자리 줄곧 앉아서 하다 보면 허리나 목 그리고 손목이 아프다. 나이가 서른이 넘으니 이런 점이 더 크게 느껴진다.    


 

퇴근한 와이프와 이야기할 때도 멍해서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새벽까지 게임하고 아침에 출근한 날이면 회사에서도 업무적으로 잔실수가 많았다. 가족들의 생일이나 념일을 깜빡 잊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게임에 깊이 빠져들수록 현실에 더 큰 균열이 생겼다.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서는 게임을 줄이거나 끊으려는 노력을 했다. 컴퓨터를 모니터, 본체 그리고 연결하는 선들로 분해해서 각각 다른 방에다가 두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꺼내서 조립하기를 몇 번 반복하고는 분해한 컴퓨터를 본가 그리고 심지어는 와이프 친정까지 갔다 놨었다. 



그럼에도 난 기어코 다시 집으로 컴퓨터를 가져왔었다. 마치 도박장에서 칩을 받아가며 희희낙락하는 중독자처럼 말이다. 이렇게 내 게임에 대한 집착은 상상이상이었다.     


 

어느 때는 디아블로 2 리저렉션에 빠져 새벽 한두 시까지 게임하다 현타가 와 집 근처를 걸으며 다시 이렇게 까지 하면 “난 개새끼다”라며 다짐한 적도 있었지만 일주일이 안 되어 난 개새끼가 됐다. 멍멍! 



어느 순간 게임을 끊으려는 결심조차 하지 않게 됐다. 항상 실패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도를 안 하면 실패할 일도 없을 테니깐.   


  

그렇게 이도저도 아니던 소강상태에 있던 나는 난 나 스스로에게 “왜 게임을 하게 될까?”란 질문을 던졌다. 사실 게임을 좋아한다고 서두에 밝혔지만 모든 순간이 즐겁지는 않다. 한 열 시간을 한다면 앞에 두세 시간이 가장 즐겁고 나머지 일곱 시간은 관성으로 한다. 


     

후자는 내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나를 하는 상태가 된다. 난 그동안 게임 안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는 것에만 집중했지 정작 왜 내가 게임을 하게 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게임을 하게 되는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떠올려보니 일이나 집안행사로 바쁠 때는 안 한다.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삼일 정도 쉬는 날이 생기면 그때 생각이 난다.      



그랬다 긴 시간이 주어지는 게 나에게 트리거로 작용했던 거다. 마땅히 할 일이 없던 나는 게임이라는 손쉬운 수단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책이 필요했다. 나에겐 게임 말고 다른 할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최근 읽었던 <도파미네이션>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술중독인 사람이 냉수마찰로 자신의 중독을 바꿔서 삶의 변화를 만든 사례가 나왔다. 나 역시 비슷했다. 글쓰기와 운동을 시작했다.



 위에서 얘기했듯 게임을 끊기 위해서 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할 거리들이 생기니 확실히 게임을 하는 빈도와 시간이 줄었다. 또 안 하게 되니 뇌 회로가 희미해졌는지 안 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물리적 환경의 변화도 시도하고 있다. 웬만하면 집에 잘 안 있으려 한다. 집에 있으면 금세 지루해지고 컴퓨터가 보인다. 그럼 파블로스의 개처럼 다시금 게임이 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아침에 씻고 집 근처 투썸플레이스나 동네 카페로 간다. 카페에 가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이용해 글을 쓴다. 그리곤 헬스장으로 간다. 일종의 내 루틴이다. 그리고 내 PC도 와이프 방으로 옮겼다. HJ는 일찍 자니깐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자고 있는 배우자를 깨우면서 까지 게임하진 않을걸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가끔 자고 있는 와이프 몰래 들어가한 적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새벽 한 두 시까지 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게임할 때 와이프가 뒤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진 않은데 이 효과를 노린 거다. 확실히 전보다는 몰입이 안 돼서 금방 끄게 된다.



이런 방법을 동원해서 그럭저럭 게임하는 시간을 하루 한두 시간 정도로 잘 유지하고 있다. 예전에 게임중독을 책중독으로 바꿨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다시금 이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 글을 쓴 지도 한 삼 년 지난 것 같은데, 또 같은 문제로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사람이 어떤 중독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도 이런데 담배나 술, 마약 같은 건 어떨까 싶다. 그럼에도 지금 하고 있는 중독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참기보다는 다른 중독으로 바꾸는 걸 권해본다. 기왕이면 글쓰기나 독서 운동 같은 생산적인 중독으로 말이다. 



Image by Sam William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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