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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Apr 29. 2023

밤마다 내 방을 찾아오는 와이프

아이 없이 신혼생활 중인 우리 집은 거실을 제외하고 방이 세 개다. 전형적인 59m2, 25평 아파트 구조다. 하나는 옷방으로 나머지는 우리 각자 방으로 쓰고 있다.      


우리는 퇴근해서 함께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삼십 분 가량 떠든 후 각자 할 일을 한다. 와이프는 주로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블로그를 쓰고 난 와이프 방에서 게임한다.    

 

가끔 내 방에서 브런치에 올릴 글을 작성할 때도 있다. 이럴 때면 와이프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웃는 얼굴로 슬금슬금 내 방으로 온다. 곧이어 내 1인용 매트릭스에 누워 벽에 책을 기댄 상태로 책을 본다.   

    

저렇게 볼 거면 차라리 자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지만 평화를 위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나 제법 현명한듯하다. 한 편으론 독서를 위한 와이프의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하니 납득이 간다.   

   

언젠간 자기 방이 아닌 내 방에서 책 읽는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 침대에서 책을 보면 금방 잠이 들어서 내 방으로 온단다.      


이런 상태로 삼십 분이 지나면(혹은 십 분 후에) 자고 있는 와이프를 여지없이 발견할 수 있다.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회사에서 고생했구나 싶어 짠하다가도 다음과 같은 고민이 시작된다. “지금 깨워야 할까? 아니면 좀 재우고 깨울까?”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우는 것은 같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럴 때면 각방 생활을 청산하고 같이 자야 하나란 생각도 든다.      


처음에는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난 언제 일어날까 한 시간마다 자고 있는 와이프 얼굴을 쳐다봤지만 일어날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결국 와이프는 그날 새벽 한 시까지 잤다. 나도 덕분에 새벽 두 시쯤 잤다. 다음 날은 당연히 피곤했다.      


이런 경험 이후로는 되도록 일찍부터 깨우고 있다. 그러나 와이프는 잠들면 불이 켜져 있건 내가 시끄럽게 키보드를 따닥이던 개의치 않고 잔다.     


이런 마당이니 와이프가 내 방에 들어오면 “이따가 어떻게 깨우지” 하는 생각부터 든다. 내 방에서 자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싶다가도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어떻게든 책을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그래도 내가 좋으니깐 내 방까지 와서 책을 보는 거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이렇게 얘기했다가 나중에 안 오면 어쩌지란 생각에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그럼에도 나도 자야 하니 깨우긴 하지만 이럴 때마다 마음이 편친 않다.


각방 생활하니 이런 일도 겪게 된다. 서로 푹 잘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한 편으론 이런 부작용도 생긴다. 세상에 완벽히 좋은 일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사진: UnsplashDavid Cl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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