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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Aug 19. 2023

물은 셀프. 효도도 셀프.

가족 경조사 각각 챙기면 안 되나?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개인 간이 아닌 가족 간 결합이라는 말이 있다. 결혼을 앞두고 이런 경고성 멘트를 들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여겼다. 우리 부모님들은 누구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난 배우자인 HJ와 어떻게 잘 살지만 고민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결혼을 해보니 서로 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두 사람이 결혼했으니 가족행사는 두 배가 되어야 맞건만 체감상 네 배에 육박했다. 강도 또한 그랬다.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지냈던 제사와 결혼 후는 달랐다. 예전에는 같은 집에 사니깐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따로 사는 지금은 시간을 빼서 가야 했다. 직장인에게 시간은 소중한 자원이다. HJ와 가족행사를 위해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일이었다.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부모님도 엄격해졌다. 예전엔 막내아들이었다가 이제는 결혼한 성인으로 취급해서 그랬을까. 미혼일 때는 친구 약속로도 제사를 빠질 수 있었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엄청 서운해하실게 눈에 보였다. 생각 같아선 나 혼자 우리 가족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데, 아빠는 우리 둘의 모습을 모두 보고 싶어 했다. 결혼해서 따로 사는 큰누나도 본인의 생일에 챙겨주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서운함을 토로한 일도 있었다.

 

지금도 본가에 HJ와 함께 가면 신경이 쓰인다. 혼자일 때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데 그녀가 있으면 신경 써야 해서 그렇다. 낯선 우리 집에 혼자 남겨지게 둘 순 없지 않은가. 무언가에 구속받는 걸 개인적으로 가장 괴로워하는 편인데 결혼 후 이런 상황이 잦아졌다. 어떨 땐 처가에 가는 게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거기서는 배우자 신경을 덜 쓰고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깐.


그렇다고 처가에 있는 게 편하다고 볼순 없다. 우리 집은 용건이 없으면 각자 흩어져서 개인 시간을 보내는 문화다. 반면 처가식구들은 용건이 없어도 한 공간에서 계속 같이 있는다. 개인적인 시간이 있어서 숨통이 트이는 나는 이런 점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런 불편에도 그녀와 나는 일 년 내내 서로의 집을 오갔다. 우리 역시 평범한 K사위, 며느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족 경조사로 바쁘던 어느 날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곧바로 다음과 같은 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다시 반문한다. 삼십 년 동안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 그 집의 일원이 되는 게 가능한 걸까? 누군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건 아닐까? 자문자답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부모님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서가 아닐까란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 이만큼이나 잘 살고 있어요~ 자식 잘 키우셨어요!"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그녀와 이게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는데, 결혼한 지금도 누구를 위해서 가족행사를 다니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우리 부모님들 모두 좋으신 분이라는 거다. 다만 개인과 개인으로 만나기 쉽지 않은 우리나라 풍토가 이런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나는 본가에 HJ는 처가에 각각 가면 안 되는 걸까? 물도 셀프인 시대에 효도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Image by Oberholster Venit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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