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서 싸우고 오지 마” HJ와 제주도로 여행 간다는 말에 우리 회사 과장님이 한 말이다. 이 말에 웃으면서 “네”라고 대답하면서 속으론 ‘여행 가서 자유롭게 돈 쓰는고 노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요즘 HJ와 사이도 좋았기 때문에 제주도까지 가서 트러블이 일어날 거라곤 일도 생각 안 했다.
그런데 과장님은 뭔가 알고 있었던 걸까. 확률 0%라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고성이 오간 수준은 아니었지만 서로 뾰로통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여행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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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번 여행이 좋지 않았을까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점은 여행을 간 타이밍이었다. 보통 현실에 삶이 힘들거나 무료할 때 현재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여행 욕구가 든다.
그런데 내 경우 현실에서도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제주도는 이번 년 도에만 네 번 넘게 다녀와서 새로운 장소에 대한 설렘이 떨어지기도 했다.
두 번째는 서로 여행 스타일이 달랐다는 점이다. HJ와 구 년이 넘는 기간을 함께 했음에도 우리는 여행을 간 적이 많진 않다. 일 년에 많으면 두 번 정도 간 것 같다. 그리고 몇 번 안 되는 여행을 갈 때마다 종종 다퉜다. 왜 다퉜는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여실히 느꼈다.
나는 여행에서 있어 전형적인 P다. 즉, 무계획 형이다. 항공권도 편도로 끊는 걸 좋아하고 숙소도 여행지에 가서 정하는 편이다. 정해진 게 떠나는 날짜 빼곤 없다시피 한다. 숙소나 식당이든 어따ᅠ간 것을 정할 때 거기 근방에 구속되는 게 싫다.
반면 HJ는 J스타일에 가깝다. 엑셀로 시간대 별로 일정을 정해두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숙소와 왕복 비행기 티켓은 물론 차를 타고 다닌다면 주차장소까지 준비해야 마음이 놓여하는 편이다.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2박 3일 동안 정해진 숙소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이번에 렌트까지 했다. 차가 있다 보니 주차장이 필수였고 이걸 검색하는 과정에 피로감을 느꼈다. 여행을 온 건데 하나도 자유롭지 않았다.
거기에 HJ를 배려한답시고 음식취향이나 장소를 맞추려고 하다 보니 더 그랬다. 나중에 들었는데 HJ도 나를 신경 썼단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배려하려다가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여행을 하게 된 셈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깨달은 점은 여행은 가고 싶을 때 가야 한다는 것과 같이 가는 사람성향이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음 여행은 HJ와 여행 코스를 각자 하루씩 짜기로 했다. 어떤 부부에세이에서 본 것처럼 일 년은 같이 여행하고 다음 연도는 따로 여행 가는 방식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