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18년 6월 24일부터 불법이었던 여성 운전을 전면 합법화했다. 이로써 세계에서는 모든 여성들이 운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도 내 주변 기혼자들을 보면 운전은 남편이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 같다. 아마 아이가 있다면 엄마가 돌보기 용이해서 일수도 있고 아버지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종의 가업인 셈이다. 물론 내 단편적 경험이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서해안고속도로가 없었을 때 인천에서 부터 고향인 목포까지 열 시간 넘게 운전하는 모습이 선하다.
이때 아버지는 고향에만 도착하면 기절하듯이 잤는데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이런 아빠가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운전자가 된 지금 열 시간 넘게 꽉 막힌 도로를 달려야 했던 그는 얼마나 피곤했을까.
이런 환경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나도 무의식에는 운전은 남자가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와 내 위 누나 둘 다 운전을 하는 데도 그랬다. 어렸을 때 생긴 생각은 이래서 무섭다. 그래서 결혼 후에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를 꽤나 받았다. 운전을 안 하면 배우자로서의 도리를 안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차를 끄는 걸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 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집에 차가 있을 때도 잘 안 썼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고 남의 애들은 못써서 안달인데 너는 왜 그러냐고 제발 좀 끌고 나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누나들은 이런 얘기를 듣고 잘 끌고 다녔지만 난 말할 때만 몇 번 끌다가 결국은 대중교통이나 발로 걸어 다녔다.
내가 왜 운전을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는데 속도나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인 것 같다. 스피드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나만의 공간은 굳이 차가 아니더라도 카페를 좋아하는 내가 만족할만한 공간이 많다.
그래서 남들이 드라이브를 즐긴다고 하는데 난 좋은 지 잘 모르겠다. 특히나 운전할 때는 운전에만 집중해야 돼서 주변 풍경을 볼 겨를이 없다. 내겐 드라이브가 좋다기 보단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난 두 발을 땅에 딛고 걸어 다니는 게 좋다. 가진 에너지가 적어서 운전을 하면 쉽게 피곤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직장은 지하철로 삼십 분 이내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다. 왕복하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한 시간가량의 여유는 내겐 너무 소중하다.
이런 성향 탓에 운전면허를 따는 과정도 험난했다. 도로주행 시험에 세 번이나 탈락하고 네 번에서야 땄다. 마지막 도로주행에서도 강사님이 나를 떨어뜨릴까 붙일까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난 도로주행 연습시간을 삼십 시간 넘게 했다.
이때부터 난 운전에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마지막으로 운전할 때마다 피할 수 없는 HJ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그녀는 내가 운전하고 있으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불안해하며 이야기한다. 그럼 나도 불안감이 전파되어서 운전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몇 번 이야기를 했는데도 잘 안되나 보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운전하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잘 안 하게 되는 면도 있다.
변명 같지만 이런 이유들로 운전은 배우자인 HJ가 도맡아 하는 편이다. 처음 운전하기 무섭다는 HJ에게 할 수 있다며 말한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이제 그녀는 나보다 운전을 더 능숙하게 잘한다. 둘이 차로 어디를 갈 일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조수석 쪽으로 몸이 먼저 간다. 이런 나를 보고 그녀는 눈을 흘기지만 멋쩍게 웃으며 꿋꿋이 옆에 탄다.
그래도 요즘은 갈 때는 내가 운전을 하려고 한다. 운전도 더치페이다. 계속 옆에만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다. 특히나 처가에 갈 때 그렇다. 조수석에 타고 있는 내 모습을 장인장모님한테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딸을 고생시킨다고 생각하실까 봐 그렇다. 가끔 HJ가 서비스로 운전해 줄 때가 있는데 이땐 참 좋다. 내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