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로리 시즌2를 보고>
더글로리 시즌2가 성황리에 끝났다. 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카지노가 아쉬운 마무리로 욕먹은 것에 비해 더욱 돋보였다.
세상에 끼친 영향력도 컸다. MBN에 <불타는 트롯맨> 황영웅이 학폭논란으로 자진하차했다. 채널A에 <하트시그널4>은 초중고 생활 기록부 제출에 동의한 사람만 출연시키로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더글로리를 봤다. 학폭을 경험한 당사자로서 피해자의 고고통을 어떻게 묘사했을지도 궁금했다. 고데기로 피해자 팔과 다리를 지지는 장면은 과해서 드라마 몰입에 방해됐다. 하지만 학교폭력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묘사를 표현한 대사가 일품이었다. 문동은과 같은 고통을 나도 느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됐다. 새로운 수학학원에 다니게 됐는데, 거기서 한 친구와 싸웠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를 붙잡고 몸싸움을 했는데 난 오른쪽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 했고 상대방은 내 목을 잡고 졸랐다. 끙끙대며 엎어치려 했지만 이 친구는 넘어가지 않았고 점점 숨쉬기 힘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뻘개진 얼굴로 캑캑대고 있는 나를 상대방은 놔주었다. 내 첫 패배였다.
그런데 학원에는 우리만 있던 게 아니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한 친구 M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소심해진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는 전형적인 강약약강 스타일이었다. 내가 약해보이자 물어 뜯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욕설로 시작했다. 여기서 맞서야 했지만 패배로 위축되어 있던 나는 그 욕설을 묵묵히 받았다. 이 순간만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세상에는 얕보이면 더 짓밞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다. 점점 폭력 수위는 높아졌고 육체적 폭력까지 가했다.
동은이처럼 강당에 불려가진 않았지만 불규칙적으로 맞았다. 불규칙함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학교에서는 언제 나를 때릴지 몰라 생각했고 집에 가선 맞을 때 어떤 표정을 짓고 행동을 할지 생각했다. 더글로리에서 피해자 동은이 가해자 연진에게 “내 세상이 온통 너라는 게”는 대사가 나온다. 나 역시 그랬다. M은 내 세상이였다.
견디다 못해 가방에 식칼을 넣어 학교에 가져갔었다. 신문지로 말아 가방 맨 밑에 뒀었다. 걔가 때리는 순간 찌르려고 했다. 수업을 들으며 칼을 손에 든 채 피범벅이 된 바닥에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이 친구를 찌른 후에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를 고민했다. 근데 이 날따라 시비를 안 걸더라. 우리 둘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다시 식칼을 집 싱크대 서랍에 꽂아뒀다.
이런 괴로운 나날들은 울면서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서 끝났다. 엄마는 괴롭히던 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뒤로 M은 날 건드리지 않았다. 내게 악마같았던 M은 누군가에겐 착한 아들이었다.
M은 그날 뒤로 다른 타겟을 찾았다. 나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던거다. 더글로리에 김경란처럼. 또 다른 지옥 시작이었다. 내가 맞을 때 보다 더한 모멸감이 들었다. 내가 떨어져야 하는 절벽에 다른 사람을 민 기분이었다. 의도적으로 그 장면을 안 보려 했다. 철저히 방관자로 살았다. 언제 내가 다시 타겟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각했다.
M은 중학교 2학년 때 전학을 갔다. 이 뒤로 졸업할 때까지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새겨졌던 상처를 몸은 잊지 않는다. 언제 맞을지 모르는 두려움은 내 몸에 남았다. 지금은 키가 180이 넘고 운동도 해서 건장한 나인데도 성인 남성만 보면 꺼려진다. 공중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는 옆에 누가 있으면 오줌이 잘 못 싼다. 다른 사람을 팔아넘겼다는 비참함도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방관자 효과>란 책에서 따돌림에 관한 효과적인 전략이 나온다. 따돌림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게 부정적 행동이란걸 알려주기 보다는 다른 학생들이 따돌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더 효과적이란다.
“학폭은 이런 이유로 나쁜 거야”보다는 “학폭에 대해서 다른 친구들은 나쁘게 생각해”가 낫다는 거다. 여러 실험들을 언급하지 않아도 학폭이 나쁘다는 걸 애들도 다 안다. 다만, 다른 친구들이 이것에 대해 나처럼 생각하는 지 확신할 수 없기에 이런 상황에서 방관하고 만다.
더글로리 청소년 버전이 나왔으면 좋겠다. 더글로리는 청소년 관람불가라 학생들은 볼 수 없다. 이거 보고 학생들이 친구들과 토론했으면 좋겠다. 이 과정속에서 다른 친구들도 학폭을 안 좋게 생각한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으면 한다. 그래서 지옥에 빠져있는 누군가를 도와주길 바란다. 경란이, 나와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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