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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Mar 12. 2023

야. 읽을만한 책 좀 알려줘

야. 읽을만한 책 좀 알려줘


친구 A가 전화로 내게 물은 말이다. 이게 진짜 얘가 한 말이 맞나 싶어 “책! 그러니깐 북?”이라 되물으니 웃으며 맞단다. 이럴 수가 내가 아는 A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무슨 심경에 변화라도 있냐고 물으니 한 번 읽어보고 싶단다. 얼마 전에 몇 년 만에 있었던 소개팅을 성황리에 끝냈기 때문인가.

   


A와는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시체방에서 만났다. 시체방이 뭐냐면 OT 저녁 술자리에 이런저런 이유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방이다. 이 방엔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먹다가 주량을 몰라 정신을 잃은 친구, 인싸들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 등 온갖 종류의 패배자들이 모인다.     



난 술이 몸에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초저녁부터 시체방에 입소해 있었다. 방에 "여긴 어디 난 누구"모드로 누워있는데, 저녁 11시쯤 씩씩대며 불만에 차 중얼중얼 거리는 친구 한 명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게 A였다.



이유를 들어보니 A는 술이 안 취했는데 XX이가 자기가 취했다며 들어가라고 했다며 분개하고 있었다. 저렇게 화내는 걸 보니 취한 게 맞는 것 같은데 되게 열 내내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린 방에 천장 보고 이불보에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금방 친해졌다. 우린 딱히 공통점은 없었지만 잘 통했다. 이 시기 땐 주변 사람과 유독 쉽게 친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린 대학교 때 첫 수업 때도 만나게 되었고 결국 같이 다니는 사이가 됐다. A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친구였다. 수업을 대놓고 빠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는 시험 하루 전에만 밤을 새웠다. 그마저도 중간에 PC방을 가고 저녁엔 술을 마셨다. 이럴 거면 왜 밤을 새우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말 붙이는 넉살 좋은 성격과 유머코드가 맞아서 우리는 자주 어울려 다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 때 이렇게 노는 것만 좋아하는 이 친구는 발전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멀리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내 이런 내 태도와는 별개로 계속 연락해 주고 덕분에 지금은 그런 것 따지지 않고 만나는 관계가 됐다.      



이런 우리는 롤이라는 게임과 과거 이야기, 말장난으로만 소통했었는데 갑자기 A가 책에 대해 물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온라인 교보문고에서 그동안 읽었던 수백 권의 책 중 이 친구가 읽을만한 책들을 골라 5권 정도 보내줬다.      



사실 이렇게 보내면서도 이 친구가 한 권이라도 다 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리나라 성인이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통계도 차치하더라도 이 친구가 책을 좋아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게 안 읽어본 사람이 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읽으면서 중간중간 느낀 점을 내 카톡으로 보내기도 하고 어디까지 읽었는 지도 보냈다. 엄마가 카톡으로 유튜브링크를 보내는 기분이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대견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결국 A는 우리 중 가장 먼저 책을 다 읽어냈고 이 책으로 독서모임까지 하게 됐다. 아래 썼던 글에서 간 독서모임이 바로 이 모임이다.

여보! 우리 진짜 가야 돼. (brunch.co.kr)



신기하다. 이 친구에게 한 번도 책을 읽을라고 말한 적 없는데 스스로 읽고 있는 모습이. 생각해 보면 내 주변에 이런 일이 종종 생겨나고 있다. 우리 엄마랑 와이프한테도 내가 책을 읽으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어느 순간 읽고 있다. 이런 거 보면 좋은 게 있다고 강요할 일은 아니다. 내가 어떤 것이든 꾸준히 하다가 그 모습이 좋아 보이면 자연스레 그 사람도 그 행위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다. 




A가 새로운 독서모임에 들어갔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엄청나다. 이런 시도가 그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킬지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도 설레하는 A모습이 보기 좋다.



사진: Unsplash의 Alexis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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