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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Mar 04. 2023

어제 친구가 파혼했다.

“애들아 나 파혼했다. 그렇게 됐다.”    

 일하다가 잠깐 본 단톡방에 남겨져 있던 친구 J의 메시지였다. 도착 시간을 보니 오늘 자정을 넘기고도 30분이 넘은 시각이었다.  



일찍 자서 늦게 확인한 나만 답장이 없었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헐”하는 반응이었다.           



결혼식이 이주도 남지 않았는데 파혼이라니. 이런 진지한 순간에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속으로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라니 나 미친놈인가”란 생각이 스쳤지만 결코 기쁨의 웃음은 아니었다. 이건 사람이 비현실적인 일을 갑자기 마주했을 때 나오는 실소에 가까웠다.     



며칠 전 J는 결혼한다며 우리를 불러 모았다. 1차로 피맥집을 간 후에 2차로는 카페를 갔다.



난 청첩장 문구와 디자인이 이쁘다고 칭찬했고 친구 중 누가 축가를 부를지 혹은 신랑이 깜짝 축가를 부를지 말지에 대해서도 열렬히 토론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파혼라이니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단톡방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 “XX야 이거 진짜야?”


친구 K : “맞는 것 같아. 나도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런 거 가지고 장난할 리가 없잖아”


나 : “맞지 전화해 봤어?”


친구 K : “아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못했어”


나 : “그렇지 무슨 말을 하겠냐. 아무튼 알겠다 다음에 연락할게”     




이렇게 전화를 마친 후에야 친구가 진짜로 파혼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예상치 못한 일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단톡방에 답변을 해야 할지 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내 얘기를 들은 와이프가 친구에게 전화해 보란 말을 했다.      



갑자기 찬물로 세수한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이 일을 겪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단 어떻게 친구를 대해야 할지에 대한 내 걱정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와이프 말대로 오후까지 기다리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 “어 XX야 카톡 봤다. 괜찮나?”


J : “... 음”


나 : “괜찮을 리가 있겠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여행이라도 가고 그래라 지금 몸 잘 추스르고 나중에 괜찮아지면 다시 보자”


J : “그래”     



친구의 안 좋은 목소리를 실제로 들으니 마음이 더 안 좋았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다소 황급히 전화를 끊었나 싶어 후회스러웠다.



 좀 더 이야기를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지금은 혼자 두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왔다 갔다 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 점점 더 친구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분명 서로 상견례도 했을 거고 회사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청첩장과 함께 결혼한다는 이야기도 다 했을 거다.



친구는 어떤 마음과 표정을 가지고 파혼했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과 회사 사람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전달했을까.  


    

심지어 결혼 전에도 같이 살고 있었다는데 상대방에 짐을 뺀 빈 공간을 보며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동안 본 심리학책에서 이럴 때 어떻게 하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막상 이런 일을 겪으니 머리가 백지가 되버린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픔에 대해서 난 어떻게 친구를 대해야 하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Image by Tumisu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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