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냥이 Jul 10. 2023

꼭 성장해야 행복한가요?

성장이란 이름의 허상

이주 전 KBS더라이브에 유시민 작가가 게스트로 나왔다. 원래는 이런 시사프로를 즐겨 보진 않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정치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가 나온 편은 다 찾아본다. 그가 가진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생소한 주제도 나도 알아먹을 수 있게끔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가 나온 <알쓸신잡>, <썰전> 같은 교양 프로그램도 재밌게 봤다.     

 

이번에도 스스로를 소매 지식상이라 소개하는 그다웠다. 역시나 알기 쉬운 말로 이번에도 내 지적 충족감을 채워준다. 작가님 발언 중에 “우리나라가 십 대 경제 대국이다. 심리적인 G8이다.”같은 듣기 좋은 얘기들이 우리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답변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잘 사는데 내 삶은 왜 이래?”란 생각을 사람들에게 들게 끔 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행복은 본인이 생각하는 기대치와 실제 현실 간의 차이다. 보편적으로 이 갭이 크면 불행해지고 작으면 행복해진다.      


거기에 1인당 국민소득 GNI, GDP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30~35위 국가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통쾌함까지 들었다. 듣기만 좋은 헛소리들이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렇게 솔직한 태도로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이어지는 급감하는 출생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앵커의 질문에도 유시민 작가는 인구증가가 국력의 확장이라든가 행복의 증진을 나타내는 지표가 결코 아니라고 단언한다. 인구수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더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면 되지 않느냐 답변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인구가 줄어들면 세수가 줄어들어 국민연금을 못 받는다든지 국방을 지킬 군인이 없다는 식의 나라가 망하는 시나리오만 줄곧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구가 줄어들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신선했다. 세상에는 반드시 좋고 나쁜 일로만 구분되진 않는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언뜻 보면 안 좋은 이야기에도 분명 장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도 성장이란 개념을 너무 당연시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래서 막연히 성장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장은 당연한 것이고 꼭 해야만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일까?. 이번 연도 서점가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작가는 우상향 하는 성장을 행복이라 정의한다. 내 친구 A도 꿈이 뭐냐는 내 질문에 성장해서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온 세상이 성장에 대한 관심으로 뜨겁다.   

   

그런데 난 이런 얘기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성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란 의문이 든다. 성장이란 개념은 과연 측정할 수 있는가. 거시적인 것 예를 들어, 국가 성장은 GDP, GNI 같은 수치로 잴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행복지수를 도입한 부탄이라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미시적 수준에서 개인의 성장이란 무엇을 말할까? 통장에 어제 백만 원이 있었는데 오늘은 백이십만이 있다면, 어제 책을 20페이지 읽었는데 오늘은 30페이지 읽었다면 이것을 성장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성장이란 과연 좋기만 한 걸까? 암도 돌연변이 세포의 무분별한 과잉 성장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닌가.     


결국 성장이란 건 절대적 기준이 없다. 본인이 기준을 정하기 아름다. 성장해야 행복하다란 개념도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이 명제가 맞다면 성장이란 개념이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덜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 주변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성장은 현대의 발명품이다. 예전 중세 시대에는 성장이란 개념이 없었다. 전년도와 다음 연도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았고, 영주의 자식은 영주가 되고 마구간 지기의 아들은 마구간 지기가 됐다. 이 당시 사람들도 다음 연도에 이번 연도보다 좋아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자식과 손자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질서에는 누구 밑에서 태어났느냐가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했다. 이 세상은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었다. 한 나라가 부강해지면 한 나라가 몰락하는 식이었다. 부의 총량은 정해져 있었고 거기서 누가 더 많고 적게 가지느냐의 차이였다. 부자가 천국을 가기 힘들다는 말도 이런 개념에서 왔다. 그의 부는 누군가에 재산을 가져와서 이뤘다고 여겨진 것이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지는 물건이 매 년 많아졌다. 그리고 은행들은 본인이 가진 것보다 아홉 배나 많은 돈들을 사람들에게 빌려준다. 이렇게 부의 총량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것이 됐고 성장이란 개념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렇듯 성장이란 개념도 나온 지 얼마 안 된 스마트폰같이 따끈따끈한 신상이다. 


이런 발명품을 가지고 현대인들은 착각한다. 이것이 없었던 것이 태반이었던 우리 인류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이것이 있어야만 행복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유발하라리의 “사치품은 시간이 지나면 필수품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성장이란 개념을 빌려왔다. 하지만 이 불분명한 개념을 가진 성장은 우리의 행복을 멀게 만들 수 있다. 특히나 양적인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그렇다. 난 이보다는 우리는 어떤 행위에 몰입할 때 행복하다는 칙센트 미하이 의견에 더 이끌린다. 따라서 행복을 위해서 목표를 채우기보단 내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자주 이런 상태에 빠져드는 걸 지향하는 방향이 맞지 않을까 싶다.


Image by Gino Crescoli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 친구가 파혼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