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다
간호사 : "XX 씨 맞으신가요?"
나 : "네 맞아요."
간호사 : "여기 xx내과인데요. 아버님이 쓰러지셨어요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나: "예?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롤 랭크 게임을 막 시작했는데 전화가 왔다. 핸드폰 화면에는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받지 않으려다가 왠지 싸한 기분이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위와 같은 통화를 하게 됐다. 처음엔 보이스 피싱인가 의심했다. 하지만 금품을 요구하지 않는 걸로 봐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차키와 핸드폰, 지갑만 챙기고 1층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전화를 받은 시간이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혔다. “아빠의 마지막 목소리도 못 듣는 건가”라는 절망적인 생각과 “그래도 별일 없을 거야”라는 희망을 병원에 가는 내내 반복했다.
이번에 느낀 건 이렇게 경황이 없을 땐 운전하면 안 된다. 퇴근시간이라 막히기도 했지만 15분 정도 걸리는 병원까지 가는 내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도착해서 차를 주차할 때까지 몇 번은 부딪힐 뻔했다. 지갑도 차에 두고 갔는데 몰라서 와이프가 나중에 건네줬다.
도착한 병원은 어수선했다. 아빠는 환자 대기석인 소파에 이상한 기계를 꽂은 채 누워있었다. 기계 화면엔 빨간 글씨가 보이며 불길하게 울려댔다. 그 곁에는 얼굴이 굳은 채 서있는 의사, 간호사 그리고 엄마가 와 있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장면에 순간 멍했다.
정신을 차리고 엄마에게 응급차를 불렀냐고 물었고 엄마는 곧 올 거라고 했다. 이런 말을 하는 도중에도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고 소리치는 간호사가 아빠 입에 산소를 올려주는 호흡기를 작동시켰다. 엄마는 의식이 희미해지려는 아빠에게 일어나라면서 뺨을 때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당혹감과 무기력감 등 지옥 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119 대원이 두 명이 들어왔다. 119 대원들에게 의사 선생님은 해당상황을 설명했고 아빠를 들것에 실어서 응급차로 실어 날랐다. 할 게 없던 나에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잡아달라고 말했고 정신없이 뛰어서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응급차에는 나와 병원 의사 선생님 그리고 119 구조대원들만 탔다. 엄마는 기력이 없어서 나중에 와이프랑 같이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구급차 안에 의식이 없는 아빠 얼굴을 보는데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아빠가 이렇게 된 까닭은 항생제로 인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이었다. 임플란트를 위해 다니는 치과에서 항생제를 줬는데, 그게 몸에 안 맞아서 알레르기 반응이 온 것이다. 이런 동일한 일이 그 치과에서만 세 번째라는 건 나중에 들었다.
응급차는 병원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가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빠의 인적사항을 대답한 후 의사와 119 대원과 뭔가 이야기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구급차 안에서는 거리 감각이 안 느껴진다는 것도 알았다. 마치 내가 인질이 되어 범인의 아지트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응급실에서 내가 보호자로 수속을 밞고 아버지에게 조치를 취하고 혈액검사, X-ray검사 소변검사 등을 했다. 하는 동안 엄마 누나 매형, 그리고 와이프도 왔다. 응급실은 혼자만 들어갈 수 있어서 교대로 아빠를 보고 왔다.
다행히 응급실에 온 지 한두 시간 정도 지나자 아빠는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했다. 이제야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자정쯤 퇴원했다. 또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이 날은 와이프에게 양해를 구하고 본가에서 아빠 옆에서 같이 잤다.
이렇게 바로 옆에서 잔적은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빠가 잠결에 몸을 뒤척일 때마다 혹시나 알레르기 반응이 왔나 하면서 같이 깼다. 이런 이유로 새벽에 여러 번 깨서 그런가 피곤했다. 이런 일을 겪은 아빠는 다음날도 아침에 일을 갔다. 이런 날은 좀 쉬면 좋을 텐데 말이다. 나도 할 만큼 했다 싶어서 출근하는 아빠차에 타고 집에 왔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진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모든’에는 모르는 사람뿐만 아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도 포함한다는 것도. 내 생각보다 죽음은 더 가까웠다.
언젠가 회사 차장님한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을 때 차장님이 해주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세상에 오로지 존재만으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진 거야. 내 세상에 절반은 잃은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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