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냥이 Jun 16. 2023

열정이 밥 먹여주나요?

데일리 리포트 활용하기

인터넷에서 동기부여 영상을 보거나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면 열정에 불타서 지금 삶을 바꿔보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올라온다. 이런 마음이 들 땐 열정에 불타 뭔가를 해보려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이런 마음은 빠르게 식어버리고 곧 내가 살던 관성대로 돌아가 버리기 일쑤다. 그리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예 변화하려는 시도 자체를 안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내 상상 속 나는 HJ와의 관계도 직장 일도 재테크도 운동도 각종 취미 생활도 능숙하게 하는 것을 꿈꾸지만 이것은 온전히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이다. 현실의 나는 잠에서 일어나서 <장사천재 백종원>을 보다가 할 일을 못하거나 밤새 게임을 하다가 피곤한 상태로 직장에 출근하고 후회한다. 그런데 우리 이런 행동들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질서도는 증가한다. 세상 디폴트가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거다. 여기서 질서는 우리가 하려고 하는 행동이고 무질서는 하고 있는 행동이다. 이래서 다들 변화를 외치지만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게 돼버리는 이유다. 세상의 기본 질서를 역행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사람이 바뀌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에도 이런 어려움이 숨어 있다.


그래서 변화하고 싶다면 열정 이외에 이성적인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난 이런 도구로써 데일리 리포트가 적절하다 생각한다.

  

데일리 리포트란 말이 거창한데 사실 별거 아니다. 본질은 내가 하루 동안 한 일을 시간에 맞춰서 적는 거다. 내 나이 또래인 구십 년 생들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이것을 다 해봤다. 어렸을 때 원형 시계에 내가 해야 할 계획표를 적어 본 게 그거다. 굳이 내가 한 일을 기억하는데 꼭 적어야 할까? 싶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 볼품없다. 어제 먹었던 점심을 기억하는가? 엊그제 먹었던 점심은? 처음 질문부터 막힌 사람도 있을 것이고 두 번째 질문부터는 대다수 사람들이 머리를 골똘히 싸매야 했을 거다. 이렇듯 우리 기억력은 참으로 볼품이 없다.    

  

거기다 뇌는 지난 기억을 자기 입맛대로 각색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는 크게 세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 단계에서 14℃의 물에 60초 동안 한쪽 손을 담갔다 뺀다.(14℃의 물에서 사람은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에선 처음 물에 담그지 않았던 손을 60초 동안 동일한 온도의 물에 담그고 있는다. 그 후 온도를 1℃올린 15℃에서 30초 동안 더 손을 넣고 있는다. 


세 번째 단계에선 모든 참가자에게 전자와 후자 중에서 마지막으로 어떤 실험을 할 것인지 고르게 한다. 우리는 당연히 전자는 60초 동안 괴로웠고 후자는 90초 동안 괴로웠으니 당연히 전자를 택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정 반대다. 참가자의 80%는 후자를 선택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정점-결말’의 법칙 때문이다. 위 실험에서 밝혀낸 바에 따르면 사람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최고점과 최저점의 평균으로 인식한다. 이때 고통의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만약 최고점의 불쾌함이 8점이고 최저점이 7점이라면 우리가 느끼는 전체 경험은 7.5점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후자를 선택한 이유는 후자에서는 최저점이 높아졌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불쾌한 전체 경험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의 기억이란 불완전한 것이다.


직접 데일리 리포트를 쓰다 보면 많이 한 것 같은데 막상 적어보면 별거 없기도 하고 나는 별로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보면 꽤 한 것들이 된다. 쓰다 보면 이런 미스 매치들을 줄어들기 시작한다. 자신 스스로의 능력을 파악하는 메타인지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데일리리포트를 쓰는 방식은 각자의 상황마다 모두가 다를 것이다. 나는 아래 그림과 같은 방식대로 하고 있다.          

일과를 마치는 저녁쯤에 시간대 별로 형광펜을 쳐서 내가 한 일을 적고 집중도를 1에서부터 5까지 쓴다. 1은 가장 낮은 집중도고 5는 가장 높은 집중도이다. 형광펜 색도 의미가 있다. 빨간 계열로 갈수록 내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반대로 초록, 파랑 계열은 내가 미래에 도움이 되는 행동들이다. 이렇게 색으로 표현하면 볼 때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난 이렇게 하고 있다.    

  

다 적고 난 후에는 데일리 리포트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왜 이 활동에 집중도가 낮았는지 혹은 유튜브나 커뮤니티에 시간을 왜 이렇게 많이 할애했을지를 고민한다. 그리곤 어떻게 하면 생산적인 시간과 비생산적인 시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한다. 


지나치게 시간 배분이 생산적이 더도 비생산적이어도 괴롭다. 이 두 일간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아래 피드백란에 실제로 이런 고민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가답안을 적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렇게 피드백란에 써도 다 되진 않는다. 다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적어둔 건 어느새 보면 하고 있다. 확실히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을 쓰고 안 쓰고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삶의 변화를 이루고 싶지만 잘 안 됐던 분들은 데일리 리포트를 써보시면 좋겠다. 참고로 이거 되게 힘든 작업이다. 내가 했던 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이를 평가하는 일도 말이다. 그런데 짧으면 한 달 길면 육 개월 정도 하다 보면 확실히 변화가 있다. 리턴 값이 분명한 행위인 것 같다. 만약 이것이 힘들다면, 자기가 한 일만 꾸준히 기록해 보자. 이것이 쌓이다 보면, 자기만의 패턴이 보이고 이 패턴을 개선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해보니깐 힘들긴 한데, 확실히 좋다. 특히나 나를 개선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늘 똑같은 쳇바퀴를 도는 게 아니라 똑같은 루틴에서도 행동의 변화를 주니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데일리리포트를 적고 나서 내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그 자체도 즐거움이 있다. 삶을 두 번 사는 느낌이다.


사진: UnsplashYogendra Sing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