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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Jan 25. 2016

기다림/기차/서리

위의 단어들로 만든  이야기입니다.

나만의 소박한 공간에서 몸을 녹여본다. 학창시절에 설문조사를 하면 나는 늘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고 싶었다. 여행을 하려는 목적으로 파일럿도 생각해 봤지만 시력부터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다. 세계로 가려는 꿈은 우리나라를 여행하자는 꿈으로 바뀌었다.


전국을 계속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차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지금은 예상과는 다른 길로 빠져서 간이역을 지키고 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대신 사람들의 여행에 짧은 순간이나마 벗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인적이 드문 이곳으로 옮긴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곳의 조용한 분위기가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스트레스를 매일 꾸준히 지울 수 있는 공간 같이 느껴졌다. 아직 간이역 주변을 자세히 모르던 나는 기차 시간 중간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돌아보기로 했다. 기차역 근처에 잡초들과 자갈이 가득한 곳에 작은 개 한 마리가 보였다. 다가가려고 하니 당장이라도 달려들듯이 경계하며 으르렁거렸다.


움찔하며 물러섰다. 개가 왜 이런 곳에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칠 것 같아 몸을 피했다. 며칠 신경을 쓰지 않고 첫차를 보낸 이른 아침에 불현듯 떠올라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서리 가득한 차가운 곳에 뱀이 똬리를 틀듯이 개가 움츠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개 옆에 서리가 녹아있었다. 잠시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개를 끌어안고 내가 몸을 녹이던 곳에 데려갔다.


미지근한 물과 먹을거리를 주자 허기진 듯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자마자 문을 앞발로 세차게 긁으며 나가려 했다. 문이 밀려 열렸고 찬기운이 몰아쳤다. 한 발자국 나가다가 추운지 가만히 서서 순간 머뭇거리다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워서 따라가 봤지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뿐 몸을 녹이려 하지 않았다.


개에게 다가가는데 기차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소리를 듣자마자 개는 엉덩이가 떨어질 듯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짓어댔다. 순간 이 개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정차했던 기차가 멀리 떠날때까지도 계속 흔들던 꼬리는 철로에 기차의 열기가 모두 날아갔을 때 조용히 멈춰 섰다. 사람은 개를 애완용으로 생각하지만 개는 가족이나 친구로 생각한다. 사람은 개는 버리기도 하지만 개에게서 떠나버린 것은 가족이었다.


개의 기다림은 멈추지 않았다. 먹이를 주는 것 외에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자세히 보니 개 옆쪽에 서리가 녹아있던 자리는 기다리는 가족이 앉을 수 있도록 차가운 서리를 자기 몸으로 녹여 놓는 것 같았다. 매일같이 서리를 몸으로 녹여서인지 추운 겨울에 몸이 축축하고 감기에 걸린 듯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개를 위한 선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인터넷에서 신기한 물건을 찾았다. 눈 스프레이처럼 인공으로 서리를 만드는 스프레이가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서리 스프레이를 구해서 개가 잠든 사이에 개가 녹여 놓은 자리에 뿌렸다. 서리 스프레이 소리에 잠이 깬 개는 다시 서리를 녹이려고 온몸을 부비적 거렸다. 가짜 서리는 전혀 녹지 않았고 개는 내 눈을 잠시 간절하게 바라보다가 몇 번이고 짖었다. 나는 고개를 떨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표현은 읽지 못하겠지만 나의 감정은 읽었는지 마지막으로 자신의 옆 자리를 조용히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기차 시간이 다가와 내가 자리를 뜨려 하자 개는 조심스럽게 내 뒤를 따라왔다. 일을 마치고 소박한 자리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개가 들어와서 움츠려 잠이 들어있었다. 오랫동안 추웠을 개를 위해 안 입던 옷을 난로에 데워서 조심히 덮어줬다. 요즘도 기차소리가 들리면 꼬리를 흔들고 좋아하지만 내 주위를 떠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나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이 태어났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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