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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Jan 26. 2016

모자/곰팡이/언니

신청해주시는 소재로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드립니다.

학교 가는 길. 그 애와 같이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걸린다. 우리 반에 책가방을 던져놓고 멀리 떨어진 그 애 반에 가서 넉살 좋게 달라붙어 수다를 떨었다. 종소리가 야속하게만 들린다. 평소처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데 멀리서 중학생 형이 슬금슬금 따라온다.


또 그 형이다. 바쁘지도 않은지 내가 좋아하는 친구 근처를 서성인다. 교복은 입고 있으면서도 멋을 내고 싶었는지 어울리지도 않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난 형 핑계로 더 찰싹 달라붙어 친구를 보호한다. 멀리서 어슬렁거리던 형은 그새 옆으로 따라와서 같이 걷고 있었다. 친구에게 말을 걸고 손도 잡고 친한 척했다. 난 기분이 나빠 날카롭게 째려봤지만 형은 가볍게 웃을 뿐이다.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친구를 공원으로 데려갔고 나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날 불편해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상관없다. 공원에 도착해서 주저리주저리 재미도 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친구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둘만 서먹하게 앉아있었다. 말도 않고 어색해서 가방 속을 보니 마침 빵이 있어서 꺼내 들었다. 눈치를 보다가 예의상 형에게 빵을 나눠줬다. 


이런. 빵 뒷면에 곰팡이가 피었다. 웃을 수도 없고 말해주기도 싫었다. 크게 몇 입 먹다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는지 빵을 돌려 봤다. 나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어떻게든 둘러대려고 머리를 굴렸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보였고 순간. '제가 어릴 때부터 할머니랑 살았는데, 할머닌 어릴 때 전쟁을 겪으며 먹을게 없어서 잡초까지 뜯어드셨고, 그 힘든 걸 배우면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이 정도는 먹게 하셨고,.. 형이 싫어할 줄 몰랐는데..' 라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쏟아냈다.


아무 반응이 없는 걸 보고 눈치를 보며 서서히 고개를 들었더니 남은 빵을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심지어 눈가에 눈물이 맺힌 듯했다. 이런 순진한 형 같으니라고,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빠르게 가방에 다시 숨겨 넣은 빵을 흘깃 보면서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냥 순진하고 비위 좋은 형인가 싶기도 했다. 그때 친구가 돌아왔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어 보였다. 형은 할 말이 없는 건지 준비한 건지 예전에 배웠던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카드를 꺼냈다.


어디선가 본듯한 마술이었지만 훅 빠져들었다. 내가 고른걸 어떻게 알지? 둘이 짜고 날 놀리나? 친구가 그 형에게 빠져드는 걸 보고 경계심이 생겼다. 나도 뭔가 보여줘야겠는데 할 줄아는 마술도 하나 없고 다른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러다가 형에게 친구를 뺏기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고민하다가 명절에 방송에서 봤던 마술이 떠올랐다.


마술사 모자에서 토끼나 비둘기를 꺼내는. 난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시키는 대로 형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겼다. 형은 당황하며 나를 따라왔고 나는 분명히 모자 안에 토끼나 비둘기를 준비해 놓은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달리면서 모자 안을 뒤적거렸다. 비밀공간이 있을 텐데 잡히지 않았다. 토끼가 안 들어가면 꽃이라도 있을 텐데.


그때 손에 뭔가 잡혔다. 역시. 나는 빠르게 그것을 움켜쥐고 꺼냈다. 동물도 꽃도 아닌 편지처럼 보였다. 새것도 아닌 닳고 구겨진 오래된 종이. 도망가던 것도 까먹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종이를 펼치려 하니 형이 달려와 종이를 낚아챘다. 땅에 떨어진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친구에게 다가갔다.


큰일이다. 이제 고백하려는 게 분명하다. 형은 종이를 펴더니 읽기 시작했다. 유심히 들어보니 영 이상하다. 응? 나는 안심이 됐다. 그동안 왜 걱정을 했었는지. 참. 아까 괜히 오래된 빵을 먹인 것도 미안하고 오해한 것도 미안했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난 친구 옆에 찰싹 달라붙어 딴청을 하며 남은 편지 내용을 들어봤다.


그것은 친구가 아닌 친구 언니에게 고백하는 편지. 친구는 내용을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 셋이 그렇게 경계하지도 않고 나란히 걸었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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