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단어들로 만든 이야기입니다.
난 예전부터 성인이 되면 꼭 전국 도보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드디어 때가 왔고 계획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기대감에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떠나는 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공짜로 잘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았고 처음 보는 분께서 나에게 고생 많다며 선뜻 밥을 사주기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은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에 취해서 지내는데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꼬박 하루를 걸었지만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텐트를 치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다음다음날까지도 사람은커녕 찻길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점점 무인도에라도 갇힌 것처럼 불안해졌다. 심지어 지나가는 길 잃은 아이라도 눈에 띄면 와락 안고 울어버리고 싶을 만큼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때 멀리서 흐릿하게 연기가 보였다.
나는 기쁜 마음에 잰걸음으로 연기가 나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엔 허름하고 작은 집이 한 체 있었고 할아버지 한분이 앉아계셨다. 마음 같아서는 전력질주라도 하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힘이 나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 할아버지는 나를 본 것 같은데도 계속 눈길을 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낯선 외지 사람이라 경계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다가 내 눈과 마주칠라치면 젭 싸게 딴청을 하셨다.
묘한 느낌을 풍기던 할아버지 근처로 가니 어디서 구했는지 손에 프링글스가 들려있었다. 그제야 그걸 뺏길까 봐 경계한다는 것을 눈치 채었다. 그래서 난 멀리 떨어져서 내 소개를 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내 말은 들은 체도 안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뻘쭘해서 가만히 할아버지를 보는데 할아버지가 순간 일어나시더니 바가지에 투박하게 물을 떠서는 먹으라고 권하셨다. 수면제였을까. 금방 시야가 흐려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잠시 후 눈을 뜨니 온통 캄캄했다. 바닥에 손을 대니 겨울에 양말을 신고 다니는 우리 집 방바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내가 지금까지 여행했던 게 모두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떠도 보이는 건 없고 답답했다. 겨우 어둠 속에서 플래시를 찾아서 켰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내가 누울만한 자리가 있고 사방이 시멘트라도 발라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벽마다 세상에 있는 온갖 신의 형상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장식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곳이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조금씩 공기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입구를 찾으려고 뒤적거렸지만 찾기 쉽기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가까이 가져가니 바닥 한 소리가 어느 틈으로 세어 들어왔다. 아까 듣던 프링클스의 소리가 확실하다.
나는 소리가 세어 들어오는 방향 반대쪽 벽에 등을 기대고 소리 나는 쪽을 있는 힘껏 밀어내기 시작했다. 산소가 줄어들어서 숨쉬기 어려웠지만 살기 위해서 온힘을 다해 밀었고 거짓말처럼 조금씩 틈이 벌어져 문이 열렸다. 그때 할아버지는 나는 신경도 안 쓰고 다른 곳을 보며 한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내 목숨을 가지고 위험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추궁을 하려 했지만 바로 옆에 마치 살아있는 듯 가만히 숨을 거두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할아버지에게 묻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없는 사람 취급하시다가 내가 아닌 할머니에게 그리고 바위에 대고 중얼거리기 시작하셨다. 흥분한 어투와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그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큰 돌 안에 할머니를 모시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도 몇십 년 만에 이렇게 발전했으니 백 년이나 천 년 뒤까지 할머니가 썩지 않고 보존되면 그때는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본인이 완벽한 미이라는 만들어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만든다면 뜻이 이뤄지지 않겠냐며. 그리고 돌 안에서 제대로 있을 수 있을지 본인 눈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 내가 들어간 뒤 몇 년 후에 확인을 해 보려고 하셨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산 사람이 오래 살 수 있다면 죽은 사람의 보존은 더 오랫동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신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감동적으로 듣다가 나를 몇 년 뒤에 꺼내려고 하셨다는 대목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나는 공포에 몸이 굳어버렸다. 할아버지는 혼자 깊게 생각에 빠지시다가 처음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언제 올지도 모를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확인까지 하다가는 정작 할머니를 옮기지 못하고 본인이 돌아가실까 봐 걱정이 되신다고. 그러니 나에게 할머니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셨다. 우리는 같이 할머니를 들어서 정갈하게 정리된 돌무덤 속으로 옮겼다. 그리곤 마치 할머니의 영혼조차 세어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듯 꼼꼼하게 틈을 메우셨다. 우리는 그 주위를 정리하고 작은 돌들을 쌓아서 성스러운 공간처럼 꾸몄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조금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후 우린 조촐한 음식을 놓고 정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나는 할머니께서 나중에 꼭 건강하게 일어나실 것이라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뜨겁게 안아드리고 돌아섰다. 얼마 후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방바닥을 혼자 있을 때 밟고 만질 때마다 그때 생각이 강렬하고 진하게 끓어올랐다. 여행을 다녀와서 갑자기 의사가 되겠다거나 구조대가 되겠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할 것 같다. 그렇게 내 인생을 살아갈 때 사용할 수 있는 나만의 나침반을 남들보다 하나 더 손에 쥐고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으로 떠나기 위해 준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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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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