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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Jan 25. 2016

컵/소라/구름

위의 단어들로 만든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혼자 집을 지키다 보니 혼자라는 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이 되어갔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뭐가 들어갔는 지도 모를 인스턴트 음식을 데워먹고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다가 잠이 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직도 집안 곳곳에는 용도도 알 수 없는 불필요해 보이는 장비와 재료들로 넘쳐났다. 정리한다고 정리했지만 그 흔적들을 모조리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이상한 꿈을 꾸곤 했다. 꿈인지도 모르고 한참 길을 걷다 보면 눈 앞에 아주 가느다란 실이 늘어뜨려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거미줄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고개를 내려봤지만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거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 근처에는 나무도, 건물도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것이라고는 구름뿐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아래쪽 실을 따라서 가봤더니 근처의 건물 작은 틈에 종이컵이 있었다. 


얇은 실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나는 호기심에 말을 하기도 하고 대답을 기다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서 하늘로 뻗어있는 실을 당겨보았다. 하늘에서 종이컵이라도 떨어지길 바랬는데 내 희망을 비웃듯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힘없이 실만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별 일이 없었는데 멧돼지에게라도 쫓기는 꿈을 꾼 듯이 거친 호흡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하루는 어느 산에나 있을 법한 흔한 풍경의 산을 오르다가 길가에 종이컵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호기심반 장난반으로 종이컵을 들고 아무 말이나 내뱉고 귀에 댔다. 3초 정도 지나고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 종이컵을  내려놓으려는데 종이컵 안에서 또렷한 울림이 느껴졌다. 난 놀라서 종이컵을 귀에서 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잡아당겨봤다. 그러자 실이 연결돼 있었는지 약간 묵직한 느낌이 들더니 가까운 곳의 땅이 슬쩍 들리는 것이 보였다.


땅을 타고 다른 곳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지만 당길수록 땅속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찝찝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다가 돌아봤다. 조금 전까지는 그냥 쓰레기 더미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누군가의 무덤이었다. 아까 종이컵이 울렸던 것 같은 그 찝찝한 기분이 내 손 위에서 메아리치듯이 계속 울려대는 것 같아 끔찍했다. 이런 비슷한 꿈은  몇 번이나 이어졌다. 


수많은 컵이 경쟁이라도 하듯 광장 같은 곳에 깔려있기도 했고  예상할 수도 없는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꿈 때문에 더 뒤숭숭해졌다. 이제 집에 들어가면 피곤해서 바로 침대에 뻗어버리곤 했다. 피곤에 잠이 들었다가 커튼이 밝은 것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시계를 봤더니 지각도 이런 지각이 없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서 칫솔을 입에 물었다. 


그제야 쉬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입만 대충 헹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집에서 여유 있게 쉴 수 있었다. 멍하게 주위를 둘러보니 이 집에서 벌써 20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눈여겨보게 됐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니 아버지께서 꾸며주신 흰색 구름이 보였다. 오래돼서 색도 바래고 모양도 일그러지기도 해서 남이 보기엔 얼룩이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아버진 예전부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혼자만의 발명품을 만들겠다며 가족들을 힘들게 했었다. 나도 어릴 때는 계속 응원하고 잘 되시길 바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가 싫어졌다. 집안에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만 주워오고 조립하고 만드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미워하고 싶어도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미워할 수도 없는 처지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물건들을 정리한다고 했지만 흔적을 모두 지우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속이면서 계속 아버지의 흔적들을 집안에 남겨놓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는 문득 천장의 구름을 풀 같은 걸로 붙였었는지 일어난 부분이 있어서 정리하려고 만지는데 이상하게 천장이 가볍게 느껴졌다. 약간 힘을 주워 밀자 구름이 열리고 먼지와 함께 거대한 소라가 떨어졌다. 


취미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런 것은 도무지 이해가 어려웠다. 예전 같으면 짜증이라도 냈을 테지만 침대 위의 먼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소라를 닦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껍데기의 먼지만 닦고 잘 보이는 곳에 놓으려 했는데 속까지 너무 더러워 보여서 물에  집어넣었다. 순간 약하고 짧은 스파크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고 내 손도 찌릿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직감적으로 소라를 귀에 가져갔다. 소라 안에 어떤 장비가 있는지 여러 잡음에 섞여 다른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중에 한마디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안하다" 그 소리를 끝으로 소라 속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천장에서 작은 소음이 들리던 것의 원인이 이것이었다. 분명히 예전부터 계속 소리가 나왔지만 나는  무관심했었다. 


눈물이 흘러나오려 했지만 내가 아버지를 위해 슬퍼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물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터져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른 수많은 말은 필요 없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그동안 내가 싫어하던 마음도 모조리 사라졌다. 나는 대신 미안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나는 답도 없는 소라를 부여잡고 눈물을 쏟으며 미친 듯이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죄송하고 죄송하다고.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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