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keone Jan 25. 2016

무지개/지갑/커튼

위의 단어들로 만든  이야기입니다.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그렇게 어렵지도 부유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나는 용돈을 받으면 교복에 꾸깃하게 집어넣어서 주머니에 손은 넣었다 꺼내면 정리되지 않은 동전과 지폐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일쑤였다. 대학에 붙고 처음으로 나에게 지갑이라는 것이 생겼다. 명품은 아니지만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오랜 시간 동안 손으로 직접 만들어 주신 세상에서 하나뿐인 지갑이었다.


지갑을 받은 날 나는 지갑에 들어갈 만한 사진들을 집어넣기도 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지폐 몇 장을 넣어보면서 괜히 혼자 히죽거리며 좋아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어서는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나가게 되었다.

두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기회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외국에 나가서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강해졌다. 


떠나올 때 가지고 온 지갑에 소중한 사진들이 가득 들어있었고 축 처질 때마다 지갑을 열어보며 기운을 얻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분명히 학교에 갈 때는 지갑을 가지고 나간 것 같았는데 숙소로 돌아올 때 확인해보니 지갑이 온데간데없어졌다. 지갑이 아니라 가족을 잃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 어떤 물건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너무 쉽게 잃어버린 것 같아 허탈하기도 하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루 동안 이동한 곳을 몇 번이고 둘러보고 집안도 쥐 잡듯 뒤져보고 보이는 사람마다 지갑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 종일 한숨만 나오고 분통이 터졌다. 그날 밤 너무 지쳐 침대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고 어딘지 알 수 없는 풍경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드넓은 초원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하늘 위에서 비처럼 뭔가가 쏟아지는데 자세히 보니 무지개의 색을 하고 있었다. 그 비 같은 것은 땅으로 내리 꽂혔다. 


그 주위로 마치 안개로 빚은 듯 한 사람의 형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형상은 무지개의 끝으로 보이는 곳 근처로 어떤 것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런데 곧 바람에 날려가듯이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잠시 후 비몽사몽 간에 실눈을 떠보니 나에게 더 깊은 잠을 자라는 듯 커튼이 창문을 야무지게 뒤덮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커튼 쪽으로 눈이 갔고 유심히 커튼이 나풀거리는 것을 바라봤다. 그때 아까 봤던 안개로 된 형체가 흐릿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떠버렸다. 그 형체가 나를 인식한 듯이 몸을 내 쪽으로 돌렸고 그 순간 바람이 거세게 불어 커튼이 휘날리며 커튼 밖에 머물던 무지개 끝자락이 방 안쪽으로 내리 꽂혔다. 


그 무지개를 따라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숨을 몰아쉬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나는 자연스럽게 무지개 끝이 떨어진 쪽을 바라봤고 그곳에는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지갑이 침대 아래쪽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순간 눈물이라도 울컥 쏟아질 것 같았다. 지갑 안에 있는 사진을 보니 안 좋은 생각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고 지갑 안에서 웃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도 안도하며 시원스럽게 미소 지어 보았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ehdwlsez4ge/1


작가의 이전글 시계/뱀파이어/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