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림을 그리고 왜 그림을 찾는걸까
'기록'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세상은 더 이상 그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이미지와 사람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기록하고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사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찾는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그림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고 눈물을 흘린다
그림이 무엇이길래, 그림이 어떤 힘을 갖고 있기에
수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고
그들이 사색에 잠기도록 만드는 것일까
모든 그림은 주관적이다
완벽하게 객관적인 예술작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채우던 감정은 그가 그리는 그림의 명암과 색을 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가 그리는 그림의 선(line)이 된다
한 사람의 인생, 그 사람의 고뇌가
보이지 않는 연필이 되어
선 하나하나의 뾰족함과 뭉특함, 선명함과 흐릿함을 결정짓는다.
그 사람이 주목하는 것, 그 사람을 사색에 빠지게 만든 것들은
그림 속 사람의 표정과 사물의 형태로 빚어진다.
앞서 이야기했던 말을 번복해야 할 것 같다.
'기록'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도 세상은 그림을 필요로 한다.
사진과 영상이 세상의 소리와 모습을 기록하고 보관한다면
그림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한다.
누군가의 인생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그의 노력,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는 고뇌를 담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