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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Nov 19. 2020

쌤, 저희 허락받으셨어요?

평등이라는 명분

한 학교에 근무하는 수학 선생님이 앞으로 1년간 진행할 수업의 방향성과 계획 등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생들 중 한 명이 이런 질문을 했다.

“쌤, 저희(학생들) 허락받으셨어요?”

우리는 “평등”이라는 단어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정말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

현대사회에서 평등은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요소이다. 국적, 인종, 성별 등에 상관없이 모두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평등을 포함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 자유권, 행복추구권, 참정권- 또한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제공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대우받는 것”이 정말 평등일까?


병원에서 병원장과 새로 들어온 신입 의사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옳은 사회인가? 물론, 신입 의사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러나, 병원장이자 오랜 시간 동안 일해온 의사로서 갖게 된 권위와 대우가 단순히 “평등”이라는 이유로 사라져야 할까?


한 가지 예시를 더 보도록 해보자.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는 똑같은가? 어떤 이들은 두 망치가 용도만 다를 뿐 똑같이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국 똑같은 망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서 또 다른 이들은 판사와 목수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동등한 대우란 직업으로서의 가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는 다르다. 비록 두 망치가 똑같이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망치를 들기까지의 과정과 망치 자체의 무게감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판사가 되기까지 소모한 시간, 비용, 노력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다른 모든 직업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같은 보수를 받는 것은 오히려 “불평등”에 가까운 것이다.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동등한(equivalent) 대우라는 것은 단순히 모든 인간들을 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들로서 대우한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노력과 위치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이 일한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대우로 더 많은 돈을 주고, 많은 노력을 통해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간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권위자로서의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평등”이라는 명분 하에 사회적 권위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은 점점 학생과 선생님이 같은 위치에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이것이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교권은 추락할 대로 추락해버리고, 학생들을 제어할 시스템이 많이 약해졌다. 체벌금지는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고, 몇몇 학교에서는 반성문 강요 금지, 소지품 검사 금지, 휴대전화 및 전자기기 제재 금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 회사와 같은 수직적인 조직구조를 갖고 있던 공동체에서 권위라는 것이 무너지고 있다.


왜 우리는 “권위”라는 키워드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느끼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권위자”가 바르게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그 권위에 대한 책임감 또한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이 ‘제자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가야 한다’라는 책임감도 없이 오히려 자신의 권위를 반복적으로 악용한다면, 학생들 또한 선생님을 “배울 것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존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학교의 한 권위자로서 선생님은 학생들을 이끄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한 병원의 병원장은 모두에게 권위자로서의 대우를 받는 만큼 더 많이 뛰어야 하고 병원의 원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판사가 된 사람은 지금까지의 노력에 대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지만 그만큼 다른 직업에 비해 더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

회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회사만큼 수직적 조직구조가 뚜렷한 곳도 없다. 그렇기에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위치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하고, 그 권위자는 대우에 합당한 행동과 책임감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권위, 사회적 구조, 위치, 이러한 것들에 상관없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존중”이다. 정말 식상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식상한 말에 현실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 서로 간의 다름을 존중해야 하고, 아무리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이들의 말을 존중하는 자세로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 “존중”이라는 것이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권위라는 구조에 대한 불만을 갖는 것이다.


나는 이 “권위”라는 구조가 아직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권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의 모습을 보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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