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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Nov 02. 2020

행복이란 무엇인가

올더스 헉슬리 그리고 C.S. 루이스와의 대화


Chapter 0. 행복을 향한 발걸음


12개 숫자 속에 감춰진 계절들을 지나, 우리는 끝없는 선택의 갈림길을 걸어간다.

개인의 선택과 그 선택의 이유는 60억 가지에 달하지만, 그 모든 이들이 끝내 외치는 것은 단 한 문장.


“나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남을 속이고 또 나를 속이고,

남을 죽이고 또 나를 죽이고...

이 모든 일들은 그저

행복을 찾는 부르짖음일 뿐이다.


행복의 정의는 아직까지도 구름에 가려진 빛처럼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만의 방식을 통해 그 빛을 찾아 떠나고, 그 길에서 그들의 행복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예술로, 어떤 이들은 물질로, 또 어떤 이들은 인생으로 행복을 말한다.

나 또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말하는 행복과 내가 말하는 행복을 비교해보았고,

그 안에서 더욱 확고하게 그리고 더 구체적이게 행복을 정의해나갔다.

그렇게 완성되어가는 행복의 정의는 곧 나의 철학이 되었고, 사상이 되었고,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 발걸음을 더 분명하게 그리고 더 정확하게 이끌어준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다.


그는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그곳을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 불렀고, 또 그곳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고 말했다.
지위, 출신, 성별, 인종, 학벌, 그리고 능력에 상관없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
질병과 노쇠도, 슬픔과 갈등도 없는 세상이라고 헉슬리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끝내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말을 내뱉을 때에 그의 목소리에는 심한 떨림이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긴 침묵을 지나, 그가 입을 열었다.

"그곳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불행한 세상이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세상이라니.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다시 되내어보고, 또 삶 속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고통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왔고, 또 그 고통이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이 왜 신의 가장 특별한 선물이었는지.



    

Chapter 1. 열매와 뿌리


나무가 맺는 열매를 통해 우리는 그 나무의 뿌리를 보고,
반대로 나무의 뿌리를 통해 우리는 그것이 일구어낼 열매를 본다.
열매로 뿌리를 보고, 뿌리로 열매를 보는 것. 이것을 우리는 분별력 혹은 지혜라고 부른다.

멋진 신세계의 열매는 고통의 부재와 쾌락이었고, 그곳의 사람들은 이 열매를 '행복'이라고 불렀다.


멋진 신세계에는 노쇠가 없기 때문에, 그곳의 사람들은 젊음만을 즐기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해주는 정신적인 조작을 거치고, 의학기술을 통해 어떤 육체적 아픔도 느끼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들의 직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며, 각자의 일에 완벽히 만족할 수 있도록 신체적 및 정신적 특성이 조작되어 태어난다.

그리고 업무가 끝나고 난 뒤에, 그들의 하루에 남는 것은 쾌락을 즐기는 시간뿐이다.

촉감영화, 스포츠, 여행, 술, 그리고 연애까지.

특히 성적 쾌락만큼 최고의 행복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에게 순결은 수치였고, 성적인 유흥은 상식이었다.

지중해 개진달래가 우거진 사이로 후미진 좁은 공간이 나타났는데, 풀이 무성하게 자란 그곳에서는 일곱 살쯤 된 어린 사내아이와 그보다 한 살 더 먹어 보이는 자그마한 계집아이가 새로운 발견에 온통 몰두한 과학자처럼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초보적인 성교 놀이를 아주 심각하게 실험하는 중이었다.
(멋진 신세계 pg.68)

사람들은 공장에서 완벽하게 만들어 지기에, 그 누구도 부모로서의 희생과 헌신을 겪지 않았다.
이기적인 것이 당연한 세상이었다.
시기와 질투가 없고, 실패나 가난이 없고, 불행함과 괴로움이 찾아올 때면 인위적으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알약인 소마가 있기에, 그들에게 고통은 그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단어일 뿐이다.


이 모든 열매들을 맺은 나무의 뿌리는 쾌락주의 그리고 공리주의였다.

쾌락을 최고의 행복, 아니 어쩌면 유일한 행복이라 여기고,

그 쾌락주의 안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일구어내는 것.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정의였고, 그런 그들에게 이 세계는

정말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느꼈는가?

그 세상이 절대 오지 않길 바라는 떨림이었는가,

혹은 그 세상이 어서 오길 바라는 떨림이었는가.




Chapter 2. 행복의 뿌리


나는 행복이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행복이 있고,

또 그 행복은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꿈을 이룰 때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꿈을 이룬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으며

반대로 꿈이 없는 이들이 모두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나무로 된 작은 십자가를 손에 쥐고만 있어도 행복을 느끼지만,

반대로 어떤 이들은 그 십자가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한다.


쾌락도 결국 완벽한 행복이 되지 못했다.

스포츠와 여자와 소마 따위에서 인생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 이들이 멋진 신세계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그들은 쾌락이라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이 아닌 오로지 그들만의 행복을 원했다.

그 행복을 향한 여정 속에서 고통과 갈등이 그들을 괴롭힌다 하더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고통을 환영했다.

헬름홀츠는 푹신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 철저히 나쁜 풍토가 좋겠어요." 그가 대답했다. "저는 기후가 나빠야 글을 더 잘 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바람과 폭풍이 심하면......"
(멋진 신세계 pg.346)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전에 행복의 전제조건부터 말하고 싶다.

행복이라는 열매를 보기 전에 그것의 뿌리부터 보자는 것이다.

나는 그 뿌리가 자유라고 확신한다.

각자가 정의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

수 천 가지의 다양한 행복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자유.

이 자유라는 뿌리가 모든 행복의 시작이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Chapter 3. 자유의 그림자


그러나, 때로는 나도 자유라는 것이 조금은 미워질 때가 있다.

자유가 있는 세상에는 고통도 함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아프기 때문에...


각자가 서로 다른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서로가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는 것이다.

목적지가 다르다는 것은 길이 다르다는 것이고,

길이 다르다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과 시간과 노력도 다르다는 것이다.


다름으로 가득 찬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각자가 걸어가는 길만이 옳다 주장하고 남의 행복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행복을 향해 걸어가지만,

이 길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걱정과 막막함,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

그 길을 걸어가다 넘어지며 느끼는 수치심과 아픔과 슬픔이 있는 세상...

우리가 생각한 행복이랑은 거리가 멀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세상을 만든 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 모든 고통과 고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멋진 신세계를 찾는다.

영상, 스포츠, 연애, 술...

쾌락 이외의 용도로 사용될 수 있지만 반대로 언제든지 쾌락을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들.

모두 멋진 신세계가 사랑했던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에 빠져 있을 때만큼은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는 인위적이지만 그럴듯한 행복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 무섭기 때문에.




Chapter 4. C.S. 루이스의 대답


나 또한 이런 세상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존재를 믿었기에,

내가 느끼는 아픔과 슬픔에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내가 추구하던 행복을 향해 걸어갔다.

그 길 가운데에서 나는 C.S. 루이스라는 사람을 만났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이자, 기독교 변증가로 유명한 그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지혜로운 사람에 속했으며,

그동안 풀지 못했던 나의 인생의 고민들을

하나씩 해결해준 인생의 스승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신은 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까."

나의 두 눈은 그를 보고 있었지만,

그 두 눈에 맺힌 눈물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대답했다.

"자동기계로 채워진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피조물들의 세계는 창조할 가치가 없습니다.

기계가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기계의 사랑고백이 과연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그의 어머니를 향해 말하는

'사랑해요'라는 한 마디보다 얼마나 더 가치가 있을까요?

때로는 하지 말라는 건 더 해서 속상한 아이지만,

그 아이가 그의 의지로 고백한 사랑은

부모에게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귀한 보물일 것입니다."


그는 본격적으로 우리가 가진 자유 의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옳은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자유 의지를 가졌으면서도  그릇 행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존재를 상상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로서는 그런 존재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선해질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악해질 수 있는 자유도 있는 법입니다. 악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이 자유 의지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pg.86)"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악을 가능케 하는 것도 자유 의지지만, 사랑이나 선이나 기쁨에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 또한 자유 의지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유를 잘못 사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순전한 기독교 pg.86, 87)"




Chapter 5.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 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멋진 신세계 pg. 362~363)


자유의 열매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슬픔과 이기심과 갈등과 고통과 어둠이다.

그들은 우리를 너무나도 괴롭게 했지만,
결국 우리는 그들을 통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과 행복의 가치를 알 수 있었고,

이기심이 있기에 이타심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갈등이 있기에 그것을 극복해낸 사랑의 무한한 가치를 경험할 수 있었고,

육아의 고통이 있기에 모성애의 귀함을 알 수 있었다.

삶에 어둠이 있기에 우리는 빛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올더스 헉슬리와 C.S. 루이스 두 사람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다시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왔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나는 행복이 한 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행복을 하나로 정의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행복은 자유 안에서 누리는 사랑입니다."


자유와 사랑

진부한 단어지만, 결국 이게 전부였다.

자유는 모든 행복의 뿌리였고,

사랑은 자유만이 맺을 수 있는 최고의 열매였다.

모든 행복은 불완전했지만,

사랑만큼은 완전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멋진 신세계는 쾌락을 위해 모든 고통을 없앴다.

그러나 그 고통 사이에 사랑이 있었음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고통이 두려워 사랑을 포기했다.

비록 남성과 여성의 연애는 존재했지만,

그 연애는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다.

어떤 희생도, 이해도, 배려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 보아라.

아마 그 순간에는 분명 사랑이 함께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때였다.

그때 만난 행복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가슴에 남아 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쾌락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행복이었다.

그 사랑은 나의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으며,

때로는 지쳐 쓰러져 있을 때에 다시 일어나게 해주는 힘이 되어 주었다.

어떤 것도 사랑을 이길 수 없었고,

앞으로도 사랑을 이길 수 있는 행복은 없을 것이다.



2022.06.02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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