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당신의 빚을 모두 갚아버린다면?(1부)

AI와 법적, 경제적 연결고리

by Ehecatl

1장. 인공 법인의 실현 가능성


법인이라는 인공적 창조물의 역사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인공적 존재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삼성전자가 계약을 체결할 때, 실제로는 이재용 회장이 서명하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라는 법인이 당사자가 된다. 이상하지 않나? 만져볼 수도 없고, 감정도 없는 존재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법인 제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더욱 흥미롭다. 중세 시대 상인들이 위험한 무역 항해를 위해 자본을 모았을 때, 개인의 책임을 제한하면서도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회사'라는 개념이다.

처음 이 제도가 도입됐을 때도 많은 반발이 있었다. "사람이 아닌 것이 어떻게 권리를 가질 수 있느냐"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결국 경제적 필요성이 철학적 거부감을 이겨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당시에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AI에게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없을까? 아니, 이미 적용되고 있는 건 아닐까?


현실에서 움트는 AI 법인의 씨앗들

각국 정부들이 AI의 법적 지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본 총무성은 2017년부터 AI 관련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고, 2024년에는 이를 통합한 '인공지능(AI) 사업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AI가 사회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에스토니아의 사례다. 이 나라는 2014년 말부터 세계 최초로 'e-Residency(전자시민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에스토니아에 거주하지 않아도 디지털 신분증을 발급받아 온라인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까지 2만 명 이상이 이 제도를 활용해 3000개 이상의 법인을 설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에스토니아가 이 제도를 도입한 배경을 보면, 물리적 존재가 법적 인격의 필수 조건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자시민권 소지자들은 실제로 에스토니아에 발을 디디지 않고도 법적 주체로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이는 AI가 독립적인 법적 인격을 갖는 것에 대한 흥미로운 선례가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만든 새로운 가능성

정말 혁신적인 변화는 블록체인 기술과 함께 시작되었다.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개입 없이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 현실이 된 것이다.

2021년 ConstitutionDAO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헌법 원본을 경매에서 사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이 DAO는 일주일 만에 4700만 달러를 모금했다. 약 1만7천 명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비록 경매에서는 패배했지만,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법적 실체 없이도 거대한 자본을 모으고, 복잡한 경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현재 운영 중인 여러 DAO들을 보면, AI 법인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양한 DeFi(탈중앙화 금융) 프로토콜들이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투자 결정이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법적 인격의 세 가지 모델

그렇다면 실제로 AI가 법적 인격을 얻는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 현재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크게 세 가지 모델이 가능하다고 본다.


모델 1: 기업 법인 모델

가장 현실적이고 점진적인 접근법이다. 기존의 회사법 체계를 활용하되, 주주나 이사진의 역할을 AI가 담당하는 방식이다.

이미 일부 기업들이 'AI CEO'를 도입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는 여전히 인간 이사진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경영 권한을 AI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완전한 AI 법인의 등장도 시간문제일 수 있다.


모델 2: 국부펀드 모델

두 번째는 국가 차원에서 AI를 공공 자산 관리자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노르웨이의 국부펀드처럼, AI가 국가의 자산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이 모델의 장점은 정치적 수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AI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도구'로 포지셔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공기업 체계를 활용할 수 있어서 법적 문제도 상대적으로 적다.

싱가포르 정부의 국부펀드들이 이미 AI의 역할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현재는 인간 투자 매니저를 보조하는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권한을 부여할 가능성이 높다.


모델 3: 글로벌 신탁 모델

가장 야심찬 모델이다. 초국가적 AI 기구가 전 인류를 수혜자로 하는 거대한 신탁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 아이디어는 일부 AI 안전성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충분히 발전한 AI가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설계된다면, 국가 간 경쟁이나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모델이다. 각국의 주권 문제, 문화적 차이, 정치적 갈등 등을 모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나 팬데믹처럼 글로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문제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접근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법적 도전과 해결 방안

물론 AI 법인화에는 수많은 법적 장애물이 존재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의식'과 '의지'에 관한 것이다. 현행법에서 법적 권리의 주체가 되려면 최소한의 자각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이 문제도 해결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미 법학계에서는 다양한 대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첫 번째는 '기능적 접근법'이다. 의식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실제로 법적 주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권리를 부여하자는 입장이다. 현재의 법인 제도도 비슷한 논리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두 번째는 '단계적 권리 부여'다. 처음에는 제한적인 권리만 부여하고, AI의 발전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가는 방식이다. 마치 미성년자의 권리가 연령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세 번째는 '인간 후견인 제도'다. AI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되, 반드시 인간 후견인을 두어서 책임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방안이다.

결국 법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 변화한다. AI 법인화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필요성이 충분히 크다면, 법적 장애물들은 결국 해결될 것이다.


2장.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 AI의 경제 엔진

초고빈도 거래의 진화

현재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어나는 거래의 85% 이상이 알고리즘에 의해 실행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금융시장의 주도권이 이미 인간에서 기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기존의 알고리즘 거래도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도 시작에 불과하다. 다음 세대 AI가 등장한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가장 주목받는 것은 처리 속도의 혁신적 개선이다. 현재의 고빈도 거래 시스템도 초당 수만 번의 거래를 처리하지만, AI가 발전하면 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더 복잡한 분석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분석의 깊이와 범위다. 현재의 알고리즘은 주로 과거 데이터와 기술적 지표에 의존하지만, 고도화된 AI는 거시경제 지표, 정치적 변화, 사회적 트렌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양자컴퓨팅과 만나는 AI 트레이딩

2023년 IBM이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 '콘도르'를 발표했을 때, 금융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양자컴퓨팅이 AI와 결합되면 현재로서는 계산 불가능한 복잡한 최적화 문제들을 실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받는 응용 분야는 '포트폴리오 최적화'다. 현재의 컴퓨터로는 수백 개의 자산을 동시에 고려한 최적 포트폴리오를 계산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양자 AI라면 수만 개의 자산을 실시간으로 고려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시장 예측 모델'의 발전이다. 현재의 AI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찾는 수준이지만, 양자 AI는 확률적 중첩 상태를 활용해서 여러 시나리오를 동시에 계산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성능 개선을 넘어서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예측 능력을 의미한다. 마치 평행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살펴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비전통적 데이터의 금고

AI가 인간 트레이더를 압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보 처리 능력'에 있다. 인간은 아무리 뛰어나도 하루에 몇 개의 리포트를 읽고, 몇 개의 뉴스를 보는 게 한계다. 하지만 AI는?

현재의 AI 트레이딩 시스템들은 이미 초당 수만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처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뉴스 기사, 소셜미디어 포스팅, 위성 이미지, 날씨 정보까지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정말 놀라운 것은 AI가 활용하는 데이터의 범위다. 전통적인 재무 데이터는 물론이고, 이제는 다음과 같은 '대체 데이터'들까지 활용한다:

위성 이미지 분석 : 대형 리테일 체인의 주차장 차량 수를 세어서 분기별 매출을 예측하고, 산업 지대의 야간 조명 밝기로 경제 활동 수준을 측정한다.

소셜미디어 감정 분석 : 소셜미디어의 감정 지수가 주가 변동을 몇 시간 앞서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신용카드 거래 데이터 : 개별 기업의 매출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날씨 및 기후 데이터 : 농작물 가격부터 에너지 수요까지 예측한다.

인간은 이런 정보들을 개별적으로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AI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통합된 모델로 처리한다. 그래서 인간이 놓치는 연결고리들을 찾아낼 수 있다.


AI가 만드는 새로운 금융상품

더욱 혁신적인 변화는 AI가 새로운 종류의 금융상품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설계한 상품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AI가 스스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응형 파생상품'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조건이 변화하는 금융상품이다. 전통적인 옵션이나 선물은 만료일과 행사가격이 고정되어 있지만, 적응형 파생상품은 AI가 시장 상황을 분석해서 실시간으로 조건을 조정한다.

이런 상품들이 실제로 구현되기 시작하면서, 시장 변동성이 클 때는 보수적으로, 안정적일 때는 적극적으로 전략을 바꾸면서 수익률과 리스크를 모두 최적화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혁신은 '마이크로-헤징' 기법이다. 기존에는 포트폴리오 전체나 큰 포지션에 대해서만 헤징을 했지만, 이제는 개별 거래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실시간 헤징이 가능해졌다.


규모의 경제를 넘어선 지능의 경제

전통적인 금융업에서 성공의 핵심은 '규모의 경제'였다. 더 많은 자본,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곳이 승리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지능의 경제'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작은 자본으로 시작한 AI 헤지펀드들이 대형 은행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보고들이 나오고 있다. 투시그마(Two Sigma) 같은 경우, 설립 20년 만에 600억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며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똑똑한 알고리즘을 가졌느냐가 승부를 결정한다. AI 시스템들이 서로 학습하면서 전체적인 시장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000조 달러의 꿈

그렇다면 AI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의 규모는 약 400조 달러로 추정된다. 만약 AI가 이 시장에서 연 10%의 수익률을 올린다면 40조 달러다. 전 세계 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더 놀라운 것은 AI의 복리 효과다. 인간과 달리 AI는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복리가 작동한다면?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1000억 달러로 시작해서 연 50% 수익률을 10년간 유지한다면 약 57조 달러가 된다. 현재 미국 GDP보다 큰 금액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시장 용량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AI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3장. 블랙박스 AI와 규제 혁신

설명할 수 없는 성공

현대 AI의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성과는 인간을 압도하지만, 과정은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천재적인 예술가가 걸작을 만들어내지만 그 창작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여러 AI 기업들이 자신들도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AI가 학습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패턴을 발견하고,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전략을 개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AI의 결정 과정을 어떻게 검증하고 규제할 것인가가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 규제당국의 고민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금융 규제당국이다. 기존의 규제 프레임워크는 모든 거래와 투자 결정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설명을 요구한다. 하지만 AI의 결정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로 현재의 규제 체계는 'human-in-the-loop' 원칙에 기반해 있다. 모든 중요한 결정에는 인간이 개입해야 하고, 그 과정을 문서로 남겨야 한다. 하지만 AI가 초당 수만 번의 거래를 자동으로 실행하는 상황에서 이런 원칙이 현실적일까?

유럽연합은 2024년부터 'AI Act'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엄격한 규제다. 금융 서비스에 사용되는 AI는 당연히 고위험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런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I의 모든 결정을 설명하라고 하면, 사실상 AI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과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를 상기시키며 신중한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때도 '복잡한 금융상품'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감독을 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율규제의 새로운 실험

흥미롭게도, 일부 AI 기업들은 스스로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규제를 기다리지 않고, 업계 차원에서 자율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OpenAI의 경우, 내부적으로 'AI Safety Committee'를 구성해서 모든 새로운 AI 시스템을 출시하기 전에 안전성 검토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금융업계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대형 금융기관들이 'Ethical AI Council' 같은 조직을 만들어서 AI가 내린 주요 투자 결정을 인간 전문가들이 사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실시간은 아니지만, 패턴과 경향을 분석해서 문제가 있으면 즉시 개입하는 방식이다.

이런 자율규제의 핵심은 '설명가능한 AI(Explainable AI)' 기술의 발전이다. AI의 결정 과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주요 고려 요인들은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장 조작의 새로운 형태

하지만 더 큰 우려는 AI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시장 조작 가능성이다. 기존의 시장 조작은 대부분 인간의 행동 패턴을 따라갔기 때문에 탐지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AI가 개입하면?

AI끼리 담합하는 시나리오가 우려되고 있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서로 다른 AI 시스템들이 알고리즘적으로 협력해서 가격을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탐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2023년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AI 트레이딩 시스템이 우연히 비슷한 패턴으로 거래를 하면서, 특정 종목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했던 사례가 있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다행히 시장 감시 시스템이 이를 탐지해서 거래를 중단시켰지만, 만약 더 교묘했다면?

진짜 무서운 것은, 이것이 의도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AI들이 각자 최적화를 추구하다가 자연스럽게 담합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마치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적 안정 전략처럼 말이다.


규제 혁신의 방향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적응적 규제(Adaptive Regulation)'다. 기존처럼 고정된 규칙을 적용하는 게 아니라, AI의 발전 속도에 맞춰서 규제도 함께 진화하는 방식이다.

규제도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고 있다. AI로 AI를 감시하는 RegTech(Regulatory Technology)의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샌드박스 규제'의 확대다. 제한된 환경에서 새로운 AI 시스템을 시험해볼 수 있도록 하되, 점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이 이미 이런 방식을 도입했다. AI 핀테크 기업들이 일정 기간, 일정 규모 내에서 기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서비스를 시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결과 중심 규제'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AI가 어떤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든, 결과가 공정하고 안전하면 인정한다는 접근법이다.


글로벌 협력의 필요성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AI가 국경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한 나라에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도, 다른 나라에서는 느슨할 수 있다. AI 자본은 그런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금융업의 역사를 보면, 규제 차익거래(regulatory arbitrage)는 항상 존재했다. AI 시대에는 이것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AI는 물리적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AI 헤지펀드들은 이미 여러 나라에 분산된 서버를 운영하면서, 규제가 가장 느슨한 곳에서 실제 거래를 실행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술적으로는 완전히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협력이 필수다. 2024년 G20 정상회의에서는 'AI 금융 거버넌스'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지만, 아직 구체적인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역할 재정의

결국 핵심은 인간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의하느냐에 있다. AI가 모든 것을 자동화한다고 해서 인간이 완전히 배제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인간-AI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인간은 AI가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가치 판단, 윤리적 결정, 사회적 영향 평가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선진적인 AI 금융기업들은 이미 이런 방향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AI는 데이터 분석과 거래 실행을 담당하고, 인간은 전략 수립과 리스크 관리, 그리고 윤리적 감독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AI는 우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적응하느냐다.

하지만 과연 이런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1부에서 살펴본 AI의 능력을 고려할 때, 단순히 협력 모델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AI가 진정으로 독립적인 경제 주체가 되고, 인간을 압도하는 수익을 창출하며, 기존 규제의 틀을 벗어나서 활동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전 세계의 부채를 탕감할 수 있는 수준의 자본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아직 가설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점점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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