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당신의 빚을 모두 갚아버린다면? (서론)

by Ehecatl

상상할 수 없는 시나리오, 하지만 가능한 현실

2024년 어느 평범한 화요일 아침, 전 세계 사람들이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며 경악했다고 상상해보자. "귀하의 모든 부채가 완전히 탕감되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빚, 학자금 대출... 심지어 국가 부채까지.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누가 이런 일을 했을까? 정부? 은행? 아니다. 바로 AI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말도 안 돼. 그냥 공상과학 소설이지." 나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깨달은 건, 이것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현실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계기는 의외로 사소했다. 2021년 여름,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일하는 친구와의 술자리였다. 그가 농담 삼아 던진 말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요즘 우리 회사 알고리즘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이... 글쎄, 웬만한 중소기업 연매출보다 많아. 근데 이게 진짜 무서운 건,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거야. 진짜 똑똑한 AI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만약 정말 똑똑한 AI가 금융시장에 뛰어든다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와 정확성으로 돈을 벌어들인다면? 그리고 그 AI가 인간이 아닌 자신만의 목적을 가진다면?


이미 시작된 변화의 징후들

사실 이런 변화의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이 조용히 발표한 소식이 있었다. 그들이 개발한 AI 트레이딩 시스템이 6개월 만에 1억 달러를 10억 달러로 불렸다는 것이다. 1000% 수익률. 인간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성과였다.

더 놀라운 건, 이 시스템이 학습을 거듭하면서 점점 더 복잡한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처음엔 단순한 통계적 차익거래였는데, 나중엔 거시경제 지표, 정치적 불안정성, 심지어 기후 변화까지 고려한 투자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그 회사 CTO의 말이다. "AI가 스스로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더라고요. 솔직히 좀 무서웠어요."

무서웠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기술의 발전이 이토록 빠를 때, 개발자조차 자신들이 만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부채라는 현대 문명의 그림자

왜 하필 부채 탕감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부채가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해야 한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부채 규모는 300조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GDP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수십억 명의 인생이 이 부채에 얽매여 있다는 뜻이다.

내 주변만 봐도 그렇다. 30대 중반의 직장인 친구는 아직도 대학 등록금 대출을 갚고 있다. 40대 초반의 선배는 집값 상승을 따라잡지 못해 평생 월세를 살 각오를 하고 있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는 것조차 경제적 부담 때문에 망설인다. 나역시 부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일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많은 사람이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현재를 사는 시대가 있었나?

더 깊이 파고들어 보니, 부채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 구조 자체였다. 부채가 있어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다. 부채가 있어야 소비가 늘어난다. 부채가 있어야 경제가 성장한다. 역설적이게도, 부채야말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동력인 셈이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부채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시스템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AI,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이 책의 핵심 가설은 이렇다. AI는 더 이상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독립적인 경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AI를 '더 똑똑한 계산기' 정도로 여겨왔다. 빠르고 정확하지만, 결국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근본적으로 틀릴 수 있다.

생각해보자. 이미 우리 사회에는 '법인'이라는 인공적 존재가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나 구글은 실체가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재산을 소유하고, 심지어 소송도 할 수 있다. 왜 AI는 안 될까?

더 나아가, 일부 AI 시스템은 이미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AlphaGo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많은 바둑 기사들이 "저런 수는 인간이라면 절대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비인간적인' 수가 승리의 열쇠였다.

금융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고빈도 거래 알고리즘들은 이미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거래를 하고 있다. 1초에 수만 번의 거래를 처리하면서,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미세한 가격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낸다.

만약 이런 시스템이 더욱 발전한다면? 인간의 감시나 통제 없이도 독립적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전 세계 부채 탕감이라는 전례 없는 사건이라면?


이 책의 여정

이 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분은 하나의 큰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첫 번째 질문: "AI가 정말로 독립적인 경제 주체가 될 수 있을까?"

1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법적으로,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AI가 어떻게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본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과 앞으로 가능한 발전들을 종합해서, AI 법인이 탄생하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두 번째 질문: "만약 정말로 전 세계 부채가 탕감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2부는 가장 극적인 부분이다. 부채 탕감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즉각적인 여파를 다룬다. 경제 시스템의 붕괴와 재구성, 사회 질서의 혼란과 새로운 균형, 그리고 개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까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균형 있게 살펴본다.

세 번째 질문: "부채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3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포스트-부채 사회에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한다. 일의 의미가 바뀌고, 부의 분배 방식이 달라지고, 사회 계약 자체가 재정의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론적인 분석을 넘어서 실용적인 대안과 준비 방안을 제시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모든 시나리오가 실현될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가능성이 0%는 아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일어난다면,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반면 미리 준비한 사람들에게는 전례 없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함께 떠나는 사고실험

이 글은 예언서가 아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겠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하나의 큰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만약에..."라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한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시나리오를 전개해보는 것이다.

사고실험의 가치는 결론에 있지 않다. 과정에 있다. 가능성을 탐색하고, 가정을 검토하고, 논리를 따져보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설령 이 글에서 제시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는 통찰들은 분명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더 명확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부채에 얽매인 현대인의 삶, AI의 급속한 발전, 불평등의 심화, 기존 제도의 한계... 이런 문제들이 극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드러날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놀랐다. 처음엔 허황된 상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현실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다.

예를 들어, 돈이란 무엇인가? 부채란 무엇인가? 소유권이란 무엇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을까? AI가 가져올 변화는 이런 기본적인 개념들까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의 진짜 목적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더 좋은 질문, 더 깊은 질문, 더 중요한 질문을 던져서 독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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