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세요."
이 말이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더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남들이 부러워하는 타이틀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 믿었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손에 넣고 나서 제 마음은 텅 비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제게 값비싼 불행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깊은 불행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제 주변의 값싼 행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듯했던 그 시간,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의 따스함이나 손에 든 책에서 느껴지는 종이 냄새 같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제게 예상치 못한 위로를 건넸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삶의 가치가 거창한 것들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요. 행복은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숨겨진 보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가치의 역설'에 대한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만약 지금 당신의 삶이 혼란스럽고, 행복이 멀게만 느껴진다면, 잠시 시선을 돌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방, 당신의 의자, 당신의 식탁 위에도 온전한 세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작은 기쁨들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는 '아모르파티'는 거대한 성공이 아닌, 좌절 속에서도 자신을 발전시키는 작은 기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당신의 방 한가운데서도 전 세계를 유람하는 여행의 시작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장. 익숙한 풍경 속 낯선 질문
사실,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빠르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때는 그게 미덕이라 믿었죠. 지하철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오르고, 점심시간에 남들과 밥을 먹지 않고도 일하고, 그러다 지쳐서 주말에는 잠자기 바쁜 삶. 돌아보면 그 시절의 제 주위는 온통 '더 나은 나'를 향한 동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에 대해 이야기했고, 저는 그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저는 제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른을 넘기지 않은 나이에 괜찮은 직장을 얻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타이틀도 몇 개쯤 달고 있었으니까요. 주변에서는 '정말 열심히 산다', '대단하다'는 말을 아낌없이 건넸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제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에 찼습니다.
하지만 불현듯,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정확하게는 번아웃이 와버렸죠.
아무하고도 대화하기 싫었고, 나의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자책했습니다.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음뿐이겠구나'라는 무지막지한 공포가 저를 덮쳤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그저 '열심히'라는 마법에 걸려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요.
그 멈춤의 시간 속에서 저는 익숙한 풍경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보던 거리가 달리 보였고, 햇살이 창을 넘어 방 한가운데를 비추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늘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왔지?'
그 질문은 저를 잠식하던 무거운 공허함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피어났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행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정작 제 손에 쥔 것은 지독한 불행뿐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장. 값싼 행복과 비싼 불행
'번아웃'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좇아왔던 것이 실은 '비싼 불행'이었다는 것을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타이틀을 얻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저는 제 소중한 시간과 건강,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기꺼이 희생했습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행복을 위해 달려갈수록 공허함은 더 커져만 갔죠.
그 불행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었지만, 정작 제게 남긴 것은 지독한 공허함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진 그 침묵 속에서 저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어느 날, 햇살이 창을 넘어 제 발끝을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뜻하고, 평화로웠죠.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작은 온기가 스며들었습니다.
거창한 노력이 필요하지도, 돈을 써야 할 필요도 없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삶의 시선을 돌려보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얻는 소위 '행복'이 아닌,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값싼 행복'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아침에 마시는 갓 내린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에서 발견하는 위로,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소박한 대화...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도, 힘으로 쟁취할 수도 없지만, 마음을 진정으로 채워주는 소중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삶의 가치는 외부의 잣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값싼 행복들을 발견하고 누리며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싼 불행에 갇혀 허우적거리던 저에게, 값싼 행복은 제 삶의 닻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 비로소 제가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3장. 나의 방에서 만나는 세계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저는 방 한구석에 앉아 낡은 노트북을 켜고 제 생각을 쓰고, 읽은 책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창한 여행 계획을 세울 필요도, 비싼 항공권을 끊을 필요도 없는 저만의 작은 여행이죠. 스스로 온전히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들어줄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제 이야기를 들을 거라는 기쁨.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기쁨이 이 좋아하는 감정에 깔려 있는 듯합니다. 이때 보는 창밖은 늘 그 자리지만, 신기하게도 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어제는 세찬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그럴 때면 저는 제 방이 세상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작은 우주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늘 '어딘가로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꽉 막힌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계획하고 낯선 곳으로 향하죠. 왈도 에머슨 같은 초월주의 사상가들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지 못하면 여행을 원하게 된다'고 말했는데, 제가 딱 그 모양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여행은 외부의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라는 것을요.
아마도 그건 엉망이 된 제 방 안에서 저 자신과 마주해야만 했기 때문일 겁니다.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그 공간에서 저는 마침내 제 삶의 민낯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민낯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초라하고, 불안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민낯을 똑바로 마주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제 방은 저에게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진실한 여행지가 되어주었습니다.
낡은 노트북을 켜고 제 이야기를 쓰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저는 세상의 모든 풍경을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좇던 '비싼 불행'의 여행이 아니라, 제 안에서 울려 퍼지는 '값싼 행복'의 소리를 듣는 여행이었죠.
4장. 니체의 기쁨, 삶의 발전
번아웃이라는 무거운 시간을 겪고 나니, 저는 저를 갉아먹던 습관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며 자책하는 습관들이었죠. 저에게 현재 없는 것들, 이를테면 아직 얻지 못한 명성, 갖지 못한 연봉, 이루지 못한 타이틀만을 목표로 삼아 절망에 빠졌습니다.
'열심히'라는 말은 더 이상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옥죄는 감옥의 철창처럼 느껴졌죠. 저는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수록 더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런 혼란 속에서 니체의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라는 개념을 만났습니다.
이 말은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었습니다.
제 안의 나약함과 불안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삶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려는 내면의 힘이었죠. '어떻게 이 엉망인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저에게 '힘에의 의지'는 단순히 운명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삶의 모든 순간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니체가 이야기한 "자신을 극복하는 기쁨"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사회적 성공을 쟁취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불안과 나약함을 마주하고, 그것을 넘어설 때 비로소 느껴지는 진정한 희열이었습니다. 저는 제 낡은 노트북에 제 생각을 기록하면서, 바로 그 기쁨을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남들이 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여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발전은 거대한 성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초라하고 나약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제 삶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열심히'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기쁘게' 발전하는 삶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에필로그
이제 제 노트북은 더 이상 단순히 일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제 방 한구석에 놓인 이 낡은 기계는, 제가 세상과 소통하고 저 자신과 대화하는 창이 되어주었습니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제가 겪은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남들처럼 완벽하지 않은 제 삶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죠. 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완벽함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을요.
이 책을 읽는 당신도 저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삶에도 어쩌면 '비싼 불행'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 불행이 너무나 거대해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느끼는 그 모든 감정은 결코 당신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더 깊은 곳으로 이끄는 안내자입니다.
저에게 '값싼 행복'은 낡은 노트북에 글을 쓰는 행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될 수도 있겠죠.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의 방, 당신의 자리에서 이미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을 읽는 순간, 부디 당신의 삶이 당신만의 '값싼 행복'들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발전시키는 힘을 찾으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 작은 글이 당신의 삶에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저는 이만 펜을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