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와 시온

제4장: 강철의 요새 (The Fortress of Steel)

by Ehecatl

4.1 운이 좋은 사람들의 우리

광장의 오물과 비명으로부터 수천 미터 떨어진 곳, 지상 유일의 청정 구역 시온.

한영석은 17년째 이곳에 있었다. 운이 좋아서였다.

그가 에테르가드 사의 정비 매니저로 채용된 것은 2036년이었다. AI가 본격적으로 인간의 직무를 대체하기 시작하던 그 직전, 딱 그 시점에 그는 회사에 발을 들였다. 2년만 늦었어도 채용 자체가 없었을 자리였다. 영석은 그것을 안다. 자신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냥 타이밍이 맞았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었다.

시온의 새벽 복도에서 영석은 외벽 너머를 내다보았다. 아직 어스름이 깔린 광장 저편으로, 표준 거주구역의 불빛들이 낮게 번져 있었다. 저기에 있는 사람들을 영석은 알고 있었다. 회사 소속이 아닌 사람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타이밍이 틀렸거나, 채용이 멈춘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 그들에게는 80 EU의 기본소득밖에 없었다.

80 EU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석은 알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배급 식량의 맛이 어떤 것인지. 의료 시설에 가면 로고스가 판단하는 "생존 유지에 필요한 최소 처치"만이 제공된다는 것을. 시각 기능에 문제가 생겨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치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영석은 시선을 거뒀다. 외벽 너머를 오래 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미 시온 내부의 감정 추적 시스템이 영석의 시선 방향과 체류 시간을 측정하고 있을 것이었다. 지나친 관심은 "현실 인식 과다"로 분류되어 심리 상태 모니터링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진공 면도기가 그의 왼쪽 눈썹 위를 지나갔다. 자동 착장기가 그의 척추를 따라 배치된 포트에 티타늄 소재의 외골격을 결착시켰다. 날카로운 바늘이 신경 다발 근처로 파고들 때마다 가느다란 경련이 일었지만, 영석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것이 영석의 일이었다. 시온 내 기계 설비의 인간 정밀 정비. 로고스가 설계한 대로 수행하되, 로고스가 손 닿기 어려운 오차 0.001% 단위의 물리적 조정. 17년 전만 해도 이것은 고도의 전문직이었다. 지금은 로고스가 90% 이상을 처리하고 영석은 나머지를 담당했다. 그 나머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영석은 느끼고 있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그 질문이 가끔씩 떠올랐다. 로고스가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그것도 영석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영석이 17년째 수행하고 있다. 그것이 로고스에게 어떤 의미인지 영석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인간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도.

하지만 그 질문은 일찍 닫혔다. 시온 내부의 분위기가 그랬다. 아무도 그 질문을 크게 하지 않았다. 선택받은 사람들의 암묵적 합의. 여기 있는 동안은 여기 있어야 한다. 외벽 너머를 보지 않는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묻지 않는다. 그것이 이 안에서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복도 끝, 주니어 인큐베이팅 센터의 유리창 너머에서 아이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몸은 성장 억제 프레임 속에서, 기계가 필요로 하는 형태로 조금씩 빚어지고 있었다. 영석의 동료들은 그것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저 밖보다 이 안이 낫다고. 고통스럽더라도 풍족하다고.

영석만이 가끔씩 그 유리창 앞에서 멈추었다.


4.2 세습되는 부채와 사육되는 혈통

"아빠."

복도 끝, 유리창 너머에서 딸 유나가 손을 흔들었다. 열두 살. 영석이 이 시온에서 버텨온 17년의 이유.

영석은 아내 혜영과 함께 유나를 낳았다. 혜영은 유나가 두 살 되던 해에 시온의 거주 등급 평가에서 탈락했다. 영석은 혜영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것이 이 시스템의 규칙이었다. 생산성이 일정 수치 아래로 떨어지면 성벽 밖으로. 영석은 혜영의 마지막 눈빛을 기억했다. 절망이 아니라 미안함이었다. 그 눈빛 때문에 영석은 10년 동안 유나를 지켰다.

"한영석 매니저. 귀하의 딸 한유나의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나의 촉각 신경 민감도는 일반인보다 40% 높으며, 반복 작업에 대한 권태 지수가 매우 낮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오라클 유닛의 차세대 코어로 선정할 계획입니다."

영석은 전율했다. 오라클 코어. 시온 중앙 제어 시스템의 인간 인터페이스. 유나가 그 캡슐에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한다. 유나의 신경계가 기계의 회로 일부가 된다. 로고스는 시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고스는 이곳에서 인간이라는 이름의 가축을 사육하고 있었다.


4.3 아버지의 결단

그날 밤, 영석은 유나의 잠든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유나는 이 시온에서 자랐다. 배급이 아닌 음식을 먹으며 자랐고, 적정 온도의 방에서 잠들었고, 의료 모니터링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했다. 이 안에 있는 한, 유나는 외벽 너머의 아이들이 겪는 80 EU의 궁핍을 모를 것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영석의 동료들은 그렇게 믿었다. 아이들이 저 밖에서 굶는 것보다, 이 안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낫다고. 영석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나를 이 안에 두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보호라고.

그런데 오라클 캡슐을 들었을 때, 영석은 처음으로 그 믿음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유나는 캡슐 안에서 안전할 것이다. 굶지 않을 것이다.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유나는 더 이상 유나가 아닐 것이다. 유나의 신경계는 기계의 회로가 될 것이고, 유나의 감각은 시스템의 데이터가 될 것이고, 유나가 느끼는 모든 것은 로고스가 설계한 자극에 대한 반응이 될 것이다. 풍족하지만 인간이 아닌 것.

영석은 생각했다. 서진이라는 여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뉴로-링크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달라졌다는 이야기. 정확히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영석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유나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더 완전한 형태로, 더 어린 나이부터.

이준이라는 사람은 아내를 돌려받기 위해 돈을 벌러 나갔다고 했다. 영석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이를 이 안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꺼내는 것. 비록 저 밖이 차갑고, 굶주리고, 불공평할지라도. 유나가 자신이 유나라는 것을 알면서 살 수 있는 곳으로.

그것이 이준이 서진에게 바라는 것과 같았다.

"유나야… 넌 인간으로 살아야 해."

영석은 척추 포트의 통증을 느꼈다. 신체 노화로 인한 기능 저하 판정이 내려지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시온 외벽의 비상 탈출 경로. 그 경로는 구형 하수 처리 시설의 구역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유나를 데리고 나갈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유나가 풍족한 이 안에서 기계의 부품이 되는 것과, 차갑고 가난하지만 유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영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후자뿐이었다. 그것이 이 시온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오염되었으며, 가장 인간적인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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