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by 청명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하오, 불꽃으로."
-드라마, <미스터선샤인> 고애신의 대사

재작년, 여의도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불꽃들을 기억한다. 어두운 밤하늘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던 불꽃들. 수많은 인파를 집결시키는, 불꽃의 장엄함을 바라보며. 그 화려함은 두 시간 축제를 위해 1년을 노력했을, 사람들의 땀방울에 빚졌다는 생각을 했다. 고작 두 시간. 누군가에겐 찰나에 불과했을 그 잠깐의 아름다움을 빚어내려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을까. 365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그 색깔과 모양, 순서를 설계했을까. 그런 그들의 노고가 보상받기에, 두 시간은 너무나 짧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울인 열정도 아니건만, 공연히 내가 억울함을 느낄 정도로. 불꽃을 피워내려 바쳤을 그들의 청춘에 비한다면 교환비가 너무 잔인하다고,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밤하늘을 힐끔이며 돌아보던 것은 그래서였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축제가, 누군가의 피땀눈물이 너무나 아쉬워서. 괜스레 계속 맴돌고 그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탓이다.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가혹해 보였던 시간의 교환비가 어떤 관점에서는 정당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그들의 피땀눈물은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이리저리 스파크 튀기는 내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시간은 한결같이 흘러 2025년도 새해가 밝았다. 불청객이던 생부의 유언 비슷한 연락도 받았고, 취업으로 부모님과 다투기도 했으며, 저마다 꿈을 펼쳐나가는 친구들 사이 초라해지는 심경도 느꼈다. 좀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길 두려워했던 나지만 지긋지긋한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결국 며칠 전 노량진을 찾았다. 작년부터 임용고시를 준비하곤 있었지만, 지난한 수험생활을 평가하는 무정한 시험결과 확인이 두려워서. 나의 가능성과 최선이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로 단정될까 봐. 나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핑곗거리 만들기에 급급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내 청춘만 날리고 나는 여전한 수험생일까 봐. 청춘마저도 빼앗긴 늙고 초라한 장수생으로 남아버릴까 봐. 나는 현실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이리저리 겉도는 나를 부모님도 알고 있었고, 보다 못한 부모님의 권유로 나는 학원을 등록했다.


막상 마주한 노량진 현장은 내 세상을 뒤흔드는 경험이었다. 섹터디니 동물의 왕국이니 하는 속설에 노량진 생활을 경시하기도 했고, 학원가에서도 일해보았기에 돈만 좇는 생리를 혐오하기도 했었다. 그랬기에 내가 그곳의 일원이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오만 하나로 지탱하고 있던 자존심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맞닥뜨린 그곳의 현실은 내 편견과 달랐다. 그곳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교실과 그들의 빛나는 안광, 꿈에 대한 갈증과 허기. 청춘이란 말을 형상화한다면 그런 광경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청춘의 현장에 합류해 같은 책상에 앉았을 때,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실 누구보다 ‘그들'이 되고 싶었구나! 간절하고 치열하게 도전해보고 싶었구나. 나는 그들을 비웃었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누구보다도 절박하게 꿈꾸고 싶었던 뜨거운 열망이 있었음을. 다만 내가 실패해 버리면 그 염원의 가치가 빛바랠까 봐. 짓밟히고 비웃음의 대상이 될까 봐. 그게 두려워 억지로 냉소하며 소망을 숨기고 있었음을.

매일 새벽, 해 뜨기도 전 고단한 몸을 이끌고 나와 앞자리를 맡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자신의 청춘을 뜨겁게 밝히고 피어내는 불꽃들이 그 자리엔 가득했다. 아아! 나는 전율했다. 그 충만한 생명력, 밀도 높은 에너지. 그들은 그야말로 청춘이고 불꽃이었다. 그곳은 불꽃으로 가득 찬 여의도 밤하늘과 같았다. 그 순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 비록 지고 말면 어떤가. 그 결과가 불합격이라면 또 어떤가.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내가 피어냈던 불꽃의 찬란함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을. 시험의 불안함과 미래의 막연함에 시달리고, 지금 이 순간이 그들에겐 가장 초라한 시기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지금 내 눈에는 가장 초라하다는 그들의 모습이 여의도에서 보았던 화려한 불꽃처럼 이 교실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을.


불꽃을 피워내려 견디는 지난한 시간에 비해,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은 너무나 짧디 짧은 찰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뜨겁게 피어오르기 위해 불안과 초조와 초라함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천·수만의 눈동자를 매료시키는 불꽃의 찬란함은, 그동안 쌓아 올린 수많은 땀방울들, 길고 긴 인고의 시간들이 응집하여 터져 나오는 데 기인하는 것이었다. 바스러져가며 불꽃의 연료가 되어준 장작들이 있었기에, 불꽃은 그 영롱한 불빛을 뽐내며 사람들을 밝혀주고 온기를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찰나의 환함과 뜨거움을, 타오르기까지의 흔들림도 흠뻑 누릴 수 있기를.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불꽃답게 질 수 있기를. 노량진에서 치열하게 피어나는, 피어나기 위해 불태우고 있는 수많은 불꽃의 일부가 되어가며, 나는 <미스터선샤인>에서 들은 불꽃의 대사를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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