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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Jul 09. 2021

쓴맛 뒤에달콤함

신기한 배려가 놀라워서.

  중학교에서의 4년을 보낸 후,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겼다. 새로운 시작이다 보니, 새 곳이고, 새 사람들이다 보니 그 모든 것이 신선하고 좋았다. 새거는 다 좋으니까. 그건 누구나 같으니까.

"00고등학교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00학교는 31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입니다. 아마 선생님들 이 학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것입니다. 행복한 학교생활하세요." 


  1학년 담임, 학년 생활지도.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선생 수가 2배로 많기 때문에 업무 면에서 조금 많은 부분을 나눠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저것 해야만 해서 업무 처리 하다 상담할 시간 조차 없던 중학교와 다른 부분이 제일 좋았다. 그러나 28살 여자 교사에게 학년 생활지도 업무는 확실하게 낯설었다. 그러나 기분은 괜찮았다. 새로운 시작이니까. 신분 세탁하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 충분히 할만 했다.


  1달이 조금 지난 후,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역하게 올라온다는 다른 학년 학생들의 민원이 자주 제기되었다. 심지어 "그 담배 냄새의 범인은 바로 1학년입니다."라는 확신에 찬 교감선생님의 말씀이 교직원 회의 시간에 마이크를 타고 들렸다. 학년 부장님과 담임선생님들과 상의 후, 우리 학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야야, 화장실 5분 안에 나와. 오래 있으면 나 들어간다?"

  "아~ 샘. 왜그래요. 대체. 볼일도 못봐요?"

  "야. 남자! 나 들어간다. 들어가. 문 연다. 열어도 되지?"

  "샘~ 샘 남자 화장실 들어오고 싶어서 이래요? 아 진짜. 저 이거 민원 넣을거에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화장실 앞에서 아이들과 전쟁이 벌어졌다. 가장 냄새가 심한 곳은 남자 화장실이었고, 여자 화장실 출입은 자유롭기 때문에 여학생들과는 이 정도의 시끄러움은 없었다. 무턱대고 진행한 화장실 앞의 감시는 많은 아이들의 원성을 살 수 밖에 없었다. 2주 정도 지나니, 어느새 아이들과 화장실 앞에서의 인사가 자연스러워졌고 심지어 아이들은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놨다. 

  "야. 남자! 문 닫는다? 왜 열어놔. 진짜."

  "아니, 샘. 2주 넘게 있었으면 우리 안핀다는거 알거 아니에요. 하. 진짜. 의심하지 말고 걍 봐요."

사실 그랬다. 2주 넘게 화장실 앞에 죽치고 있었고 노는 아이들이 나온 후 바로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담배냄새는 나지 않았다. 참던 아이들이 급기야 자기들 의심한다며 선택한 방법에서 나는 뭔가 얻어맞은듯한 충격을 받았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들이 의심받는다는 사실을. 


  "부장님. 2주동안 했는데 저 화장실도 다 들어갔는데. 애들 담배 거기서 안펴요. 근데 애들 알아요. 우리가 자기들 의심하는거."

  "김선생은 범인을 잡지 말고. 그냥 연기가 안나게만 하면 되는거야. 안힘들어? 우리가 순번 정해서 같이 해줄까?" 부장님의 마인드는 범인 잡기가 목표가 아니라 그 행동을 하지 못하게 예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의 화장실 불침번은 굉장히 즐겁게 여유를 가지며 아이들과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진행 할 수 있었다. 너무 마음에 드는 학생생활지도 업무였다. 


  1달이 지난 후, 학생부에서 연락이 왔다. 1학년 남학생 4명이 운동장 구석에서 담배를 피다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 모두 화장실 불침번일 때 같이 농담도 하며 인사도 했던 그 노는 아이들이었다. 화를 내야 하는데 너무나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후 교무실에서 사실 확인서 작성을 시켰다. 

  "샘. 왜 화 안내요?" "죄송합니다."

  "아 그지. 화내야하는데. 좀 어이가 없어서. ㅋㅋㅋㅋㅋ"

  "...."

  "나 화장실 불침번 설때도 너네 혹시 화장실에서 폈냐?"

  "아니요. 절대. 그땐 진짜 안폈어요. 저희 아예 화장실 갈 땐 샘이 가끔 주머니 톡 튀어나오면 꺼내보라고 하니까. 그땐 아예 안들고 갔어요."

  "아니 그럼 왜 운동장서는 펴? 그동안 매 시간마다 볼 일 보러 와서 다 참고."

  "그게 운동장에서는 감시하는 사람이 없어요."

  "맞아. 그리고 넓어서. 모르던데."

  "야, 무슨 너네가 초딩이냐. 감시해야 안피고."

 진짜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웃겼다. 왜 하필 운동장에서 펴야만 했는지, 그리고 학생부에 걸렸을 때 얼마나 쫄았을지를 생각하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의 2달 동안 화장실 앞에 서 있었는데. 그땐 안걸리고. 이제야 너희는 범인이 아니구나 믿었건만..."

  "샘 죄송해요. 진짜 이제 학교에서 안피게끔 노력할게요."

  "야 노력할게요? 안필게요라고 해야지. 노력? 하 진짜.."

  "아니 어떻게 안핀다고 확신해요. 저희 그렇게 유혹에 강하지 못해요. 오늘도 봐봐요. 폈잖아요."

  "맞아. 원래 남자는 한입으로 두말하면 안되요. 안핀다 말을 못하겠어요."

  "노력할게요 샘~."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 도와줄까? 도와줄 수 있는거 다 도울게."

  "그럼 쌤 저희 유혹 당하지 않게 담배 보관해주세요."

  ".......뭐.....??" 


매우 당황한 제안이었고 도움의 요구였다. 도와준다고는 했으나 학생에게 담배를 피지 말라고 말리지는 못할 망정 그것을 보관이라니. 많은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야 너네 착각하나본데. 나 교사다. 담배 보관이 말이 되냐?"

  "아니, 샘. 도와준다면서요. 샘도 샘네 반 애들 누가 담배 피는지 다 알잖아요. 지난번에 샘반 상이 담배 보관 해준거 다 알아요."

  "아니야. 그런적 없다. 헛소리 작작해라."

  "샘~ 그럼 샘 우리 엄마랑 통화해요. 우리 엄마도 담배 피는거 알아요. 우리 담배도 보관해줘요~ 진짜 대신에 학교에서 절대 안필게요. 그럼 서로 윈윈이잖아요~"

  "아니 그래도 나 교사야. 너넨 학생이고. 이게 말이 되냐?"

  "샘. 이 시절 불우한 어린양을 구한다 생각하고. 잔다르크다 생각하시고. 해주세요. 담배가 손에 있으면 저흰 참지 못해요...네?우리가 맨날 담배 펴서 걸려서 학교 짤리면 그때 우리 원망할지도 모른다고요!!"

  

  아이들의 간절함과 나의 업무 편이성을 위해 부모님들과 통화 후에 확인 작업을 끝내고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다. 단독범행으로 하기엔 뭔가 일이 너무 커져버릴 듯 하여 학년부장님의 허락과 확인도 받았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그 이후 아침마다 내 책상서랍 세번째 칸에 자신들의 담배와 라이타를 항상 두고 교실로 향했다.


   무슨 용기와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그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니 어떻게 안핀다고 확신해요. 저희 그렇게 유혹에 강하지 못해요."

  어른도 유혹에 곧잘 넘어가는것이 사실이기에. 17살 어린 아이들은 더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확실하게 약속할 수 없는 부분은 노력할게요라는 단어로 애둘러 말하는 어린 십대 아이들의 배려가 그저 신기했다. 

그 아이들은 두 달 넘게 나의 헛질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복도에서 쌓아 온 의리가 있기에 최대한 배려를 해 준 것이다. "안필게요." 가 아니라 "노력 할게요."로 말이다. 


  마냥 노는 아이들에게도 배려와 존중은 존재했다. 자신들을 위한 일임을 누구보다 알고 있고 어려운 부탁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선의 선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확답보다는 앞으로의 과정을 보여주겠다라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렇게 나는 고작 17살에게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배웠다. 눈에 보여지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상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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