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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Jul 09. 2021

현실판 학교 이야기

대학시절 배운 내용은 쓸모가 없네요

 "대딩 때 배운 교육과정, 교육심리, 교육철학 등 그런 거 다 쓸모없어. 너무 그것을 달달 외우기 위해 애쓰지 말고." 선배와의 만남 시간에 교사가 된 여자 선배가 우리들에게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그 당시에는 뭐래, 자기는 다 외워서 합격해 놓고 왜 저러나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 시절, 우리는 대학에서 교수님들이 가르쳐주는 내용이 진리였고 그것이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의 말을 사뿐히 즈려 밟은 채 하나같이 그 과목들을 달달 외우느라 4학년을 다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교생 나온 김진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난생 첫 교생실습을 하기도 했다. 교생 실습 후에 자신이 교사에 적성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실히 가늠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내내 생각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했다. 아침 일찍 교무실 도착해서 창문 열고 환기하고, 맡은 학급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웠고, 올바른 어른인 척하느라 욕도 사용하지 않고 존댓말을 기본으로 얼굴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당시 실습에서는 딱히 교생 따위에게 중요 업무와 학생 상담 등을 맡기지 않았다.

그저 교생은 담당 교사와 가까운 책상에 앉아서 멍때리거나 다른 교사들의 수업을 열심히 들어가 참관하고 매일 일기 비슷하게 그날 뭐했는지와 느낀 점을 작성하고 검사를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실습으로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확인받을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은 순전히 개뻥이었다.


  24살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든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해 무난히 애쓰던 시간이었다. 누가 봐도 대학교를 막 졸업한 학생 같은데 구태여 엄마가 가는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를 자르고 나이 들어 보이는 파마를 해달라 외쳤다. 엄마와 함께 간 백화점에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위아래 세트 정장을 바지와 치마 가리지 않고 구입했다. 뚜벅이 주제에 항상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다녔고 안경 대신 렌즈를 고집하기도 했다. 그 당시 선배 교사들이 어린 나에게, 나이도 어린데 얼굴은 더 앳되보인다며 최대한 지금 나이보다 4살 더 많게 보여야 한다며 전수해준 꿀팁들이었다. 


  "오늘 자기 반 은진이 왜 그랬어? 애가 대들었다며? 에휴. 어려 보여서 애들이 만만하게 보는 거야." 중학생 아이들이 교사를 어리게 보면 얼마나 어리게 보겠는지, 그래도 자기들보다 열 살 넘게 많은 어른인 것을.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조차 못했고 옆에서 떠들어대는 선배 교사들의 말이 다 정답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 후로 학급 학생들이 조금만 나에게 대들거나 그러면 "너 내가 우습지? 만만해?"라는 방패를 먼저 들고 아이들을 대했다. 그 당시에는 그 행동이 얼마나 얄팍하고 옹졸한지 몰랐다. 그땐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모든 상황을 나 스스로 이해하고 해결해야 했다. 왜냐면 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른이었으니까.


  그렇게 24살에 시작한 첫 교직생활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등학생 시절 즐겨보던 '학교'라는 드라마에서는 분명 아이들과 선생님이 굉장히 잘 지내고, 학생들이 엄청 좋아했는데 왜 현실판은 이 모양인지. 궁금했으나 정답을 갈구할 여유가 없었다. 잘 지내고 싶었으나 업무도, 상담도, 방과 후 수업도 등등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 깊게 궁금해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때 달달 외운 그 모든 교육학 과목들의 내용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것들은 쓸모조차 없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여전히 비슷하게 큰 감동 없이 학교 생활을 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 시절, 교수님이 말한 그 적성이 나는 아닌가 보다라며 씁쓸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년 차가 되면서 조금씩 아이들에 대한 어려움이 사라졌고, 업무에 대한 익숙함이 생겼고, 아이들도 더이상 나를 어리게 보지 않았다. 동시에, 나의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젊은이들이 즐겨하는 파마머리가 되었고 위아래 세트 정장은 더이상 입지 않았다. 

  

  그렇게 나 역시 진짜 어른이 되고 있었다. 

  모든 첫 시작은 어렵다. 설레는 첫사랑과 첫 고백,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도, 아이가 태어나 엄마가 되는 과정도, 한 살 배기 아이가 아장아장 발걸음을 처음 떼는 것도, 첫 술, 첫 담배, 첫 경험 등등. 모든 시작은 당연히 서툴고 어색하고 모르는게 당연하다. 그것을 이어나가기 위해 얼마만큼 애쓰는지, 노력하는지, 즐기는지, 행복해하는지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주변 환경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 부모의 역할, 친구의 역할, 인터넷 등등.

  나의 첫 교직생활에서는 나 역시 준비가 되지 않았었고 억지로 억지로 무언가를 해 나가려고 아등바등거렸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헤어 나오기까지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린 모양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성장해 가는 어른이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떳떳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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