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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Jul 09. 2021

무소유

꿈조차 없는 아이들이 많네요

  "샘~ 국어 어려워요. 아니 대체 공부를 왜 해요?"

  "맞아. 국어 너무 어려워요~ 우리말만 사용할 줄 알면 되지. 뭔 작품이 이리 많아요."

  "샘. 원래 교사가 꿈이었어요?"

인문계 교실에선 상상도 못 할 질문들이다. 내가 상상하는 교실은 조용한 숨소리와 쓱싹쓱싹 필기하는 소리, 찍 형관펜 발리는 소리, 교사의 목소리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리 수업하기 싫어서 매일 같이 여러 질문과 불만을 토로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본래는 굉장히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기숙사가 있는 인문계 학교였으나 이 일 학년 애들이 유독 그렇습니다.)


  "너네는 하얀 셔츠 입고 서류 가방 메고 회사 출근하고 싶지 않아?"

  "좋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냐?"

  "너네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냐?"

  "너네 하고 싶은 일 없어? 그거 평생 하고 살려면 공부해야지!" 

  "와 존나 현실적인 질문이다." 노는 아이 중 한 명이 말했다. 아이들은 "맞아"를 연신 외치며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시끄럽게 수다를 이끌어 나갔다. 20분 정도를 그냥 둔다. 가끔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먼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시간을 주고 그다음 공식적으로 말을 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


  "샘샘 근데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그럼 문제인 거예요? 샘은 처음부터 교사가 딱 하고 싶었어요?"

  "나는 처음에 다른 거 하고 싶었어. 방송작가. 드라마 작가 하고 싶었어. 근데 어찌하다 보니 교사하고 있네?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왜 문제야. 앞으로 찾으면 되지. 너네 아직 3년 남았잖아. 3년 안에 찾아."

  "샘 근데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못 찾으면 어떻게요?"

  "맞아요. 중학교 3년 동안에도 못 찾았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찾을 수 있으려나?"

  "샘도 대학은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죠? 인문계 오니까 너무 공부만 해요. 맨날 샘들 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고."

   나 역시 중학교에서 선생을 하지 않았는가. 중학교도 마찬가지로 늘 장래희망 지금은 희망 진로를 적게 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 그럼 모범적인 학생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진로를 찾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한다. 고등학교도 찬가지다. 똑같이 진로 희망을 물어본다. 아이들은 세상에 많은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tv나 인터넷 등 다양한 부분에서 자주 비치는 직업을 알 뿐. 또한 학교에서 교사가 그것들을 알려주기 위해 따로 시간을 갖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아이들은 늘 의문만 가진 채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네. 너네는."

  "무소유가 뭐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삶. ㅋㅋㅋㅋ 그럼 가지고 싶은걸 채워봐. 그럼 쉬울 거 아니야.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이제 가지고 싶은걸 사거나 넣거나 하면 되잖아."

  "샘. 너무 남의 일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아냐.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 그냥 진짜 너네 무소유의 삶이니까. 이제 가지고 싶은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해보고 처음으로 채워보라는 거야."

  "....."

  "나 고딩 때 담임샘이 공부 안하는 나한테 뭐라 했는지 알아? 나보고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냐는 거지. 그래서 내가 엄청 잘생기고 똑똑하고 차도 있고 집도 있는 그런 완벽한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 했어. 그랬더니 담임샘이 나보고 네가 예쁘고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똑부러져야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거야. 나 자신부터가 그리 변해야 내 주변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고. 그 당시에는 뭔 개소린가 했는데.. 나이 들어보니 조금은 알겠더라고."

  "개소리래 ㅋㅋㅋㅋ."

  "나는 있지. 너네가 조금은 세상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 맨날 이 좁은 도시에서 너네끼리 놀고 지내고 하는 것보다 다른 여러 도시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 집으로 여행도 가 보고,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어. 우물 안 개구리 말고. 우물 밖 개구리가 좀 더 나을 거 같다는 거지. 직업에 귀천은 없어. 근데 무엇보다 한 가정을 책임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번듯한 일을 해야지만 부모님, 자식, 그리고 상대방을 책임질 수 있어. 언제까지 부모님 돈으로 생활할 거 아니잖아. 그들도 할배 할매 된다니까. 그럼 다 너네가 모셔야 해."

  "와.....개현실."

   "ㅋㅋㅋ 샘 고딩 때 아무도 현실을 말해주지 않았어. 그래서 매우 당황했지. 교사가 되고 다짐했던 게 나는 아이들에게 포장된 세상만을 말해주지 않겠다야.ㅋㅋ 개현실적으로 경고를 해줘야 너네가 나중에 와 김진영 거짓말했어 이런 말은 안 할 거 아니냐."


  그렇게 국어시간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다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진도가 밀려서 빡빡하게 수업을 하다가도 아이들이 답답해하면 툭 하고 쳐주었고,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 대학 이야기, 현재 학교 분위기 등등 다양한 부분을 고민해 보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나 역시 그랬고 누군가의 학창 시절도 그랬을 것이다. 그 당시 누군가 제대로 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어른을 만났다면, 직선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되돌아가는 길이라도 돌아가는 방법을 누군가가 가르쳐 줬더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황스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소유의 삶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없었으니 하나씩 하나씩 신중하게 사서 모으면 된다. 3년 동안 찾지 못했으니 못 찾을 것이다가 아니라 이제는 조금 더 빠르고 쉽게 검색하고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건을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으나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고민해본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 나의 아이들에게 국어시간은 단순한 수업 시간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인생 몇 년 더 산 선배로서의 만남 같은 희귀한 시간이었다. 지금 그 무소유의 아이들은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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