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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Jul 09. 2021

하늘 같은 은혜

스승의 날은 여전히 부끄럽습니다

  우다닥, 복도 뛰어다는 소리. 자기들끼리 낄낄 웃는 소리. 펑 풍선 터지는 소리. 유독 교무실에 앉으면 이날따라 이 소리들이 더 잘 들린다. 스승의 날.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만든 날. 낯간지러운 날. 어색한 날. 


  그날도 유별나게 아이들은 바삐 움직였고 교무실에 앉은 담임 선생님들은 대다수 상황을 알아챘다. 선생님들은 부끄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교실로 향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깊어만 지네~~"

  "응응 고마워. 아이고."

  "샘 좀 놀란 척 좀 해주면 안돼요? 완전 싱거워요~~ 이게 뭐야."

  "샘 사진 찍어요~~."


  "샘~ 오늘 샘 반스승의 날 파티 어땠어요?"

  "샘 놀라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면서요? 애들이 섭섭해하던데."

  "2반 개예쁘게 교실 꾸몄던데? 좀 반응 좀 해주지. 애들 며칠 내내 자기네끼리 준비했어요. 2반 때문에 우리도 필 받아서 파티 준비했잖아요." 

  다른 반 아이들의 수다에 오늘을 위해 우리 반 아이들이 얼마나 고민을 하고 준비를 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평소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아빠 밑에서 세월을 보냈기에 감정표현에 서툰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언가를 보고 호들갑 떠는 그런 행동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의 날이나 생일 등 온갖 행사에서 나는 크게 반응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2반아 풍선 떼지 마라. 나 이따 국어시간에 와서 다시 사진 찍을 거야."

  "헐 웬일이에요. 샘이? 그럼 우리도 폰 줘요~~"


  교실 문을 여니, 또다시 아이들이 아침에 이어 2차로 스승의 날 노래를 열창했다. 이번에는 웃으면서 아예 동영상 촬영을 하면서 교실을 들어갔다. 애들은 신나서 춤도 췄다. 뭐각 그리도 좋은 건지. 

  "아침에 이랬어야 했는데..ㅋㅋㅋ 이렇게 예쁘게 준비한 줄 몰랐어 ㅋㅋ "

  "에이 샘 아까 얼굴 빨개졌어요.ㅋㅋㅋ 어디서 거짓말해요."

  "티 났어??ㅋㅋㅋ 풍선 하늘에 띄우는 거 누구 생각이야? 이 풍선들은 대체 얼마나 샀냐? 이거 누구누구 불었어? 폐 괜찮음?"

  "샘 하나씩 물어봐요 ㅋㅋㅋㅋ"

  "샘, 근데 왜 아침엔 반응이 없었어요?"

  "맞아. 우리 반이 준비 제일 열심히 했는데. 샘이 반응 없어서. 완전 어이없었잖아요."

  "아침에 너네 왔다 갔다 하는 거 티 났었고 이런 거 너무 좋아하면 밝히는 사람 같잖아.ㅋㅋㅋ 그래서 그랬지."

  "스승의 날은 선생님들 즐기라고 있는 공식적인 날이잖아요.  그럼 좀 좋아하고 밝혀도 되는 거 아니에요?"

  "뭔가 부끄러움. ㅋㅋ난 매번 스승의 날만 되면 애들이 이런 파티 해주잖아. 어색해서 그래."

  "왜요? 뭐가 부끄럽지?"

  "그냥 왜 내가 괜찮은 교사인지, 올바른 어른인지, 너네한테 내가 좋은 영향을 주는지 등등 이런 게 약간 생각나면서 반성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오, 선생님들도 그런 자아성찰을 해요??ㅋㅋ 개신기."

 "그냥 파티해주면 즐기면 되잖아요.ㅋㅋ참 복잡하네."


  교사가 된 24살부터 매년 찾아오는 스승의 날은 어색하고 부끄러운 날이었다. 과연 이 아이들에게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의문스러웠다. 큰 반응 없이 교실을 들어가고 편지와 꽃을 들고 나와도 단 한 번도 아이들은 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번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이  지적을 하였다. 자신들이 준비해 온 파티에 대해 나의 반응이 싱거웠기 때문에. 자기들의 노력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했나를 확인받기 위해. 

부끄럽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털어놓았고. 아이들은 그저 나라에서 지정해준 공식적인 날 으스대며 좀 즐기면 어떠냐고 너무 복잡하다고 타박을 했다. 그냥 받고 즐기면 될 것을 무안해 하고 어색해 하는게 더 이상하다며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자기들이 신나서 가르쳐주었다. 

  

  "진영샘. 샘은 제가 여태 만난 선생님 중에 저희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샘이에요."

  "샘이랑 함께하는 국어시간은 그냥 인생수업시간이에요. 찐. 저희한테 일부러 수다 떨 시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샘 담배 맡겨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학교에서만큼은 안 펴요."

  "네 인생이니 네가 책임지라는 말 좀 그만해요.ㅋㅋ 너무 무거워요.ㅋㅋㅋ 스승의 날 축하해요."

  "샘 빡치면 꼭 빡친다고 말해줘요. 저희가 받아줄게요."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구태여 애써 꾸미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가 의미하는 바를. 길게 장황하게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대로 둬도 아이들은 내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구박이, 감시가, 잔소리가 기분 나쁘지 않다는 모양새가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어쩌면 아이들도 그동안 고마운 마음을, 감사한 마음을, 행복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는데 공적인 이벤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스승의 날과 생일에 부끄럽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리액션을 애써 준비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준비한 사람과 받는 사람 부담 없이 즐기다 온다. 

  

  내 스스로가 생각하기엔 부끄러울 수 있다. 부족한 거 같고 모질라 보이고 조금 더 한다면 만족할 거 같고. 그러나 나는 주는 존재인 거지 받는 존재가 아니다. 받는 존재가 괜찮다 하면 된 것을 뭘 그리 복잡하게 자아성찰을 했는지 모를 일임을. 17살 아이들에게 솔직함과 순간에 충실한 리액션을 배웠다. 그렇게 아이들 덕분에 나의 감정선에 행동에 표현에 변화가 있었다. 배운다는 것은 꼭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그런 무게감 있는 일이 아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충분히 배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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