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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Jul 09. 2021

눈, 풍경, 사진

눈 오는 날을 좋아하세요?

  수능이 끝났다. 아이들은 벌써 2학년 올라갈 준비 중이다. 문과와 이과를 갈지 선택을 했다. 그 선택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고민과 갈등이 함께 있었다. 

"샘, 샘은 문과 추천해요 이과 추천해요?"

"수학 좋아? 수학 잘해? 수학 포기 안 할 자신 있어?"

"...."

"돈은 적게 벌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사람? 수학 도저히 못해서 나는 이과 아니다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문과를 추천하지. 근데 수학 조금 견딜만하면 웬만하면 이과 가라. 문과 나오면 할게 너무 제한적이야."

"가끔 샘의 그런 직설 화법이 저희 심장을 후벼 파요....ㅠ.ㅠ"

"아침 조회 끝! 오늘도 별 탈 없이 무사히 보내도록!"


  12월, 아이들은 조금 더 성숙해졌다. 다른 친구들의 공부를 쪽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쉬는 시간에는 복도로 나간다. 자신보다 더 예민한 몇몇 친구들을 배려하기 위해 최대한의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 아이들에게는 웃음소리, 연필 소리, 시계 소리조차도 전부 거슬리고 신경 쓰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 어린 아이들은 누군가를 배려하는 방법을 자신들끼리 습득해 나가고 있었다. 

국어시간 역시 변화가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20분 15분 정도의 공식 수다 시간을 아이들의 자율시간으로 바꿨다. 단, 자율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 시간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부를 하거나, 플래너를 작성하거나, 아니면 엎드려 쪽잠을 청했다. 


  "안녕~ 밥 잘 먹었어? 자 오늘도 빡세게 국어 열공해 보자."

늘상 있던 수업시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지루하디 지루한 고전문학 소설을 가르치던 중 나 역시 지루해 창문을 봤는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와 대박 창문 봐. 눈 와!!"

  "오 그러네요. 샘."

  "오랜만에 눈이다. 그지? 야 눈 감아. 얼른 소원 빌어. 이뤄지게."

  "에이 유치하게 샘.."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며 수업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첫눈을 보고 진정할 수 있으랴. 나의 눈은 계속 창문을 향했고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있잖아. 우리 오늘 10분만 밖에 나갈래?"

  "...."

  "아 근데 한 명이라도 내키지 않으면 안 나갈 거야."

  "샘, 근데 나가도 되요? 국어시간인데?"

  "민정아, 운동장 봐봐. 혹시 체육 하는 반 있어?"

  "없어요. 샘."

  "나가도 되지 않을려나...? 만약 걸려서 혼나면 내가 나가자고 했다 해. ㅋㅋㅋ 아니 글구 어차피 끝나기 10분 전에 나갈 건데. 설마...걸리려나?"

  "오오 좋아요~ 쌤. 오늘 체육 안 들어서 완전 근질근질했어요!"

  "대박. 국어시간에 야외수업이라니."

  "나 수업 안 해. ㅋㅋㅋ 누가 수업한데? 나가서 눈 오는 거 구경하자. 이따. 사진도 찍고."


  "조용히 해. 2반. 나 걸리면 짤린다."

  "야 쉿. 얼른 서."

  "찍는다? 하나 둘 셋."

  "눈 오는 거 가만히 쳐다보니 짱 좋지 않냐? 그지?"

  "샘, 눈 오는 날 좋아해요?"

  "응 완전. 눈 오고 다음 길거리 질퍽거리고 운전하기 힘든 건 싫은데. 딱 눈 오는 그 순간은 완전 좋아."

  "저도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거 같아요. 이번에 알았어요. 샘 덕분에."

  

  각자 좋은 위치에서 서서, 앉아서, 쭈그려서 등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우리는 그날 그 시간 그 풍경을 온전히 즐겼다. 단순히 눈 오는 날이 좋아서 수업을 하다 말고 아이들에게 나가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12월 중순이었고, 어느새 1학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 아이들과의 수업도 이 시간도 이 수다도 전부 이젠 하나의 추억이 될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신분으로 살아가는 이 아이들이 겨울마저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거 같았다. 요 근래 고3 아이들의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너무 준비도 없이 2학년이 되어버린 거 같은 씁쓸함 때문이었다. 


  이 아이들과 일 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배운 것이 많다. 기분을 상황을 온전히 표현할 줄 아는 것.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도 감정과 아픔, 그리고 진심이 존재한다는 것. 때로는 이 아이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는 것.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똑같은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가도 된다고 말할 줄 아는 누군가라는 것.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에 "가자"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이 진짜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좋아하는게 뭐냐 물으면 아이들은 일 등, 연예인, 피자, 치킨 등등을 대기는 한다. 그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어느 상황을 어느 계절을 어느 말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도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거 같아요. 이번에 알았어요."라는 말은 그 순간 나에게 먹먹함을 안겨주었다. 이번에 알았다는 학생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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