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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Jul 09. 2021

물 한병의 효과

우리를 위한, 우리에 의한.

  "8반, 앉아봐. 이번 체육대회 룰이 좀 바꼈어. 그거 설명해 줄게. 빨리 앉아."

  "바뀌면 뭘 얼마나 바뀌겠냐.ㅋㅋㅋㅋ"

  "작년이랑 많이 달라졌어. 올해는 대부분이 점심시간에 리그 형식으로 경기한데. 그러니 선수들이 무조건 점심시간에 나가서 경기 치르는거야."

  "헐 대박, 그럼 밥은?"

  "왜 갑자기 바뀜? 그럼 우리 체육대회는 안해? 헐. 반티 맞추고 싶었는데~~"


  "샘~ 오늘 풋살 경기 있어요. 1반이랑!"

  "아, 오늘이야?나 안가도 되지? 샘 오늘 점심시간에 학년부 회의...."

  "괜찮아요. 쌤."

 

  "풋살 경기 어떻게 된거야? 이김?"

  "네~ 샘 당근이져. 근데 애들이 별로 안나와서 약간 별로였어요..."

  "어라? 애들 응원 안나갔어? 그렇구나..ㅠ.ㅠ"


  경기에 나가는 학생들 말에 의하면 학급 친구들이 구경하러 안오다 보니, 다른 반과 다른 학년과 비교가 되서 자신들이 위축되었다고 한다. 점심시간마다 거의 매일 리그형식의 경기가 있는데, 그걸 일일이 학급 아이들이 응원을 다니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현재는 고2. 10분 5분이 귀한 아이들이기에 응원안나오는 아이들에게 뭐라 할 순 없었다. 심지어 담임인 나 조차도 회의를 핑계로 응원 안가지 않았는가. 

그 이후로 학년 부장님께 당분간 체육대회 리그전 할 때는 점심시간에 회의를 안잡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차마 아이들 응원 가야한다고 말씀을 드릴 수 없어서 안전상의 문제를 핑계로 대고 담임들이 그래도 임장 지도를 해야하지 않겠냐했다. 


  "오오오오 고생했어. 야야 이거 얼음물 먹어. 이건 포카리 얼린거. 먹어."

  "샘, 봤어요? 와 감사합니다. 짱 시원해요."

  "나도 나도 한입만!!!"

  "진영샘~ 저희 반도 좀 줘요. 저희도 목말라요."

  "아. 그래그래. 잠만. 8반 이거 다 먹은거야? 3반 이거 나눠줘도 됨? 야 먹고 패트병은 다시 샘 줘~ 내일 다시 물 얼려 놓게."

  

  매번 점심시간 경기가 있는 날에 조용히 물을 얼려서 들고 나갔다. 교실에 들려 아이들에게 가자고 안했다. 그냥 핸드폰과 얼음물을 들고 경기 치뤄지는 운동장 가서 "8반 화이팅. 잘해라 8반"이라며 응원했다. 며칠 지나니, 여학생들이 찾아와 물었다. 

  "샘 맨날 어디가요? 무슨 점심시간 마다 없어요?"

  "아.. 중요한 일이야 왜?"

  "아 뭔데요. 어디가요. 맨날."

  "아...오늘 축구 경기 한다고 해서...ㅋㅋㅋ 나 응원가지. 어디가냐. 우리반 오늘 경기잖아."

  "헐. 샘 왜 혼자다녔어요? 우리 데리고 가야지."

  "아니...너네 공부하는거 같아서. 괜찮아. 내가 혼자 가서 너네 몫만큼 응원하다 와. 애들도 괜찮데. 쟤네는 운동에 미친자들이고. 너네는 공부해야하니까."

  

  "따르릉 따르릉 전화왔어요. 8반이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야야 윤아 패스 오오 오오 와~~~~"

  "8반 잘한다. 한 골만 더 넣자."

  "삐이익~~"

  "와. 대박~~ 잘했어~~야야 이거 먹어. 이거."

  어느새 학급 경기 때마다 여학생, 남학생 할거 없이 대다수의 학급 아이들이 나와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 아이들이 먹은 패트병을 깨끗하게 씻어서 가져왔다. 경기 날이면 교무실 앞에 찾아와 내가 주섬주섬 챙기는 얼음물과 컵을 받아들고 함께 응원하러 나갔다. 전교생에는 소문이 쫙 났다. 8반이랑 경기하면 여학생들 남학생들 응원소리가 너무 커서 시끄럽다고. 학생회 아이들은 우리반 아이들에게 다가와 응원을 좀 자제해 달라고 할 정도였다. 


  차마, 아이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선수 아이들이 경기를 하니 우리 함께 나가자고. 그 말 대신 선수 아이들에게 응원을 못나온 아이들에 대해 말했다.

"사실, 2학년이면 공부에 미쳐야 하잖아? 대신, 내가 맨날 나가서 응원할게. 나 어차피 할 일 없어."

"아..샘 괜찮아요. 첫 날에는 좀 그랬는데. 다른 반 애들도 보니까 응원 안나오더라고요.ㅋㅋㅋ"

"맞아요 샘. 샘만 나와도 되요 ㅋㅋ 다른반은 담임샘들도 안나오는데, 샘은 그래도 물까지 챙겨서 나오잖아요."

"물 밖에 못주는거지..미안...ㅋㅋㅋㅋ"


  처음에는 선수 아이들만 좋은 즐거워하는 경기였다. 왜냐면 어차피 그들은 운동에, 공에 미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 날 자신들의 점심시간을 온전히 내어준 그들이었다. 담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들에게 시원한 얼음물과 음료수를 주는 거 뿐이었다. 체육대회가 학급 아이들 그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 온전히 그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 해야 하는거지, 누군가의 강압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는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데려나가면 다른 사고가 일어날뿐더러 학부모 민원에 학생 민원에 그런 부분은 너무나 피곤했다. 그래서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함께 가자고 하지 않았고, 혼자 조용히 나간것이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알고 나서 함께 나가더니 어느새 끝에 가서는 학급 아이들 모두가 나와 응원하는 우리반만의 축제가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끝자락, 우리는 그렇게 우리들만의 축제를 30분씩 즐기고 있었다. 온전한 우리를 위한 우리에 의한 그런 축제를.

어느새 아이들은 강요하지 않아도 눈치 주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긴 말 필요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것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스스로를 책임지는 스스로 생각하는 멋진 아이들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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