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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Jul 09. 2021

첫만남,첫경험

어서 와,문과는 처음이지

  2학년 담임을 신청했다. 아이들에게는 쿨하게 내년에 또 만날 거니 우리 째째하게 아쉬워하지 말자며 인사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진짜 문과 담임이 되었다. 나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문과 담임은 또 처음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첫 경험이었다. 모든 첫 경험은 짜릿하고 떨리고 긴장되고 설레지 않는가. 


  "안뇽~ 또 만나니 좋지? 8반 담임이야. 긴 말 안 해도 되지? 와... 반가운 얼굴들 개많네?ㅋㅋㅋ"

  "대박 샘. 샘 반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하네요?"

  "1년 잘 부탁드려요~."

작년에 그래도 복도 끝, 화장실 앞, 교실에서 스치듯 만났다고 올해 아이들과는 어색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아이들도 나도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새로 적응할 필요까진 없어서 좋았다.


  문과 국어 수업은 파트별로 진행을 한다. 고전문학, 비문학, 현대문학 이런 식으로 교사들이 나눠서 들어간다. 그래야 시험문제 낼 때도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고 가르치는 부분에서도 전 반을 동일하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국어과에서도 29살은 막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고전문학 중 고전시가와 비문학 중에 사회, 경제 파트를 맡았다. 사실 비문학 부분은 나 역시 자신 없는 파트였으나 다들 연세들이 지긋한 분들이라 양보를 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아이들과 같은 EBS 문제집을 사서 방송을 보고 필기를 하고 문제를 풀었다. 분명 1학년 교과서 수업을 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교과서와 EBS 교재 수업을 같이 병행해야 해서 아이들만큼 국어공부를 하고 가르쳐야 했다.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보니 내가 대학가던 그 시절의 수능과 달리 내용들이 너무 현실적이고 어려웠다. 분명 나의 수능 국어 점수는 높은 편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나이가 먹음에 따라 머리가 굳은 건지 아니면 본래 나의 지식 상태가 그 모양인지 굉장히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비문학 사회, 경제 부분이랑 고전 시가 부분을 샘이랑 같이 할 거야. 미리 말할게. 봐봐. 샘도 너네처럼 공부하고 방송 보면서 해. 무슨 말인지 알지? 교사라고 다 똑똑한 건 아니야."

  "샘 샘 똑똑하니까 국어교사하고 있는 거잖아요~."

  "아니야 난 그냥 운빨이었나 봐. 요즘 공부해보니까 와... 너네 진짜 존경하게 됨. 이 어려운걸 너네 어떻게 풀었냐. 암튼. 결론은 뭐냐면 샘도 공부하면서 너네 가르치니까. 내가 실수할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는 거야. 나보다 더 잘 아는 누군가가 있겠지? 그럼 그 아이가 때로는 나 대신 쉽게 설명을 한다거나 그런 부분도 가능하다는 거지. 샘이라고 다 천재처럼 모든 문제의 답을 아는 거 아니다? 알았지?"

  "샘이 모르면 어떻게요?"

  "그지. 나도 예전에 학생 때는 선생님은 천재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난 아니야. 너네랑 같아. 수업하다 내가 모르는데 거짓말하면서 아는 척하는 것보단 미리 양심 고백이 나을 거 같지 않냐?"

  "...."

 "날 천재로 봤다면.. 다른 국어샘 들어오라 할게.."

  "ㅋㅋㅋ아니에요~ 샘."

  "그래, 나도 이런 말 하는 거 쉽지 않다.ㅋㅋㅋ"


  2학년 문과반 수업을 들어가 같은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다들 괜찮다고 알겠다 했다. 고마웠다. 교사가 모르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내가 최대한 노력을 할 테니 잘 봐달라는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고백이었다. 아이들은 쉽게 괜찮다고 답했다. 말하고 나니 수업 준비가 조금은 덜 부담되었고 나도 즐거워하며 국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문과반들은 국어에 질문도 굉장히 많았다. 아이들이 문제집을 들고 오면 나는 공강 시간에 풀어보겠다 하고 점심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다. 공강 시간에는 늘 문제집을 풀고 해설하느라 바빴다. 아이들의 질문지에 간혹 가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으면 비문학을 잘 푸는 친한 재성이를 찾아갔다. 

  "재성아 나와봐. 얼른." 

  "왜요, 샘?" 

  "이거 봐봐. 이거 답이 3번이거든? 답은 알겠어. 근데 설명을 못하겠음...ㅠ.ㅠ 이거 나한테 설명해줘." 

  "ㅋㅋ 샘 잠깐만요. 저도 문제 좀 볼게요."

  "으악 어려워 어려워. 그래도 고마워. 내가 진짜 너 좋아하는 거 알지?ㅋㅋㅋㅋ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말만 해. 넌 내 비문학 스승이야.ㅋㅋㅋㅋ"

  "ㅋㅋ아니에요. 샘. 저도 이렇게 하면서 공부하는 거예요."

  "나도 비문학 잘하고 싶다...경제 부분 진짜 어려워. 넌 어떻게 이리 잘 풀어?"

  "샘. 경제 부분은 기본 상식을 조금 갖추면 풀기 진짜 쉬운데. 저는 아빠가 주식해서 그래서 어렸을 때 종종 들은 용어들이라...ㅋㅋㅋㅋ 애들도 다 어려워해요."

  "난 교사잖아.....ㅋㅋㅋㅋㅋㅋ암튼 고마워!! 또 올게 ㅋㅋㅋㅋ"

  재성이와의 만남은 일주일에 1~2번 꼴로 이어졌다. 그만큼 편하게 찾아가서 내가 모르는 것을 쉽게 이야기하고 재성이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는 것이다. 

복도에서 둘이 서서 설명을 듣고 있으면 아이들은 지나가면서 "진영샘 배우는 중?"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응응. 이따 설명해 줄게. 개 쉬움."이라면서 나 역시 쿨하게 받아들였다.


  이전 교직 생활에서는 교사는 다 알아야 하고, 아이들이 묻는 질문에 바로바로 올바른 답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온갖 지식과 시간 싸움인 고등학교는 그것도 문과 국어 담당을 하게 되면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몇백개가 되는 국어 지문을 바로바로 안다는 것은 정말 천재인 것이고, 교사 역시 모의고사와 수능 지문을 스스로 풀어보고 분석해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와, 나 샘 문제집 훔쳐가도 되요? 필기 개쩔어요"

  "샘 이거 사진 찍어도 되요?"

  "교사인 나도 이정도 공부하는데 너네는 더 해야지?"라며 농담 따먹기가 가능해졌다.


  만약 나의 서툰 고백에 아이들이 싸한 반응을 보여줬다면 그 역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가 푼 문제집을 봤고, 내 필기를 확인했고, 내 설명을 듣고 저 사람이 얼마만큼의 투자를 했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쿨한 대답이 나왔고, 자신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려 준 것이다.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내 또래의 어른보다, 혹은 나보다 더 어른인 사람들보다 인내심이 많고 배려심이 깊음을 종종 느낀다. 묵직함 속에 따뜻함이 존재한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경험, 첫만남인 고등학교 문과 국어 선생님은 별 탈 없이 아이들의 존중과 배려 속에서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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