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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Jul 09. 2021

행복의 나라

행복은 성적순이 맞네요

  "저 대학 포기요..." 

  "문과 갈지 이과 갈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어요. 제 인생 핵 망..."


  2학기 시작과 동시에 교실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시끄럽던 아침 시간에는 조용히 책을 보거나 영어단어를 외우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그것을 안하는 다른 아이들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엎드려 있는 상황이 많았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토록 변화시켰는지 모르겠으나 조금은 낯설었던 그러나 대한민국 여느 고등학교 교실 풍경과 같았다. 

  

  "여름 방학에 별일 있던 사람?"

  "저요~." "난 별로."

 뭔가 특별한 일이 있다던 재성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저요? 저 강릉에서 1달 동안 있다 왔어요."

  "우와 왜?"

  "우리 형 강릉에서 알바했는데, 형이 나보고 같이 가도 된다고 해서  같이 알바함."

  "와 시급 얼마였냐? 돈 얼마나 받았어?"

  "근데 재성아 너 돈 벌어서 행복했던 거야? 완전 물욕......."

  "아니요 샘~ 놀았잖아요.ㅋㅋㅋ 다른 애들 다 공부하러 학교 나올 때 저 혼자 바닷가에서 알바하면서 놀았다고요. 남들은 못해본 걸 미리 했다고나 할까."

  "그럼 공부하러 나온 애들은 불행했다는 거야?"

  "와...샘.....또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와 진짜."

  

  "2반아. 과연 행복의 조건은 뭘까? 재성이처럼 남들이 안 해본 것을 해보는 경험? 아니면 굉장히 넘쳐나는 돈? 아니면 이름 있는 대학?"

  "샘이 늘 그랬잖아요. 행복의 조건이 성적순일 수도 있다고. 저 이번 방학에 그 말 완전 공감했어요."

  "저도요. 성적은 중요하더라고요."

  "야 무슨 공부가 그리 중요하냐. 돈이지. 부자면 다 장땡이야."

  "난 게임할 때가 젤 행복하던데."

  "야..많이 컸다. ㅋㅋㅋ 내가 맨날 농담처럼 성적순이 행복의 조건이 되더라고 말한 그 의미를 이제야 느끼다니..그래도 빨리 느꼈다?"

  "샘 여름방학 동안 미친 듯이 공부했는데, 저만 한 게 아니더라고요? 애들 다 기숙사 학원 다니고 그랬어요."

  "완전 절망 개망. 내 인생 어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잠잠코 들어보니 방학 동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방과 후 학교 수업도 9시부터 2시까지 듣는 학생들도 있었고, 학원에서 2학기 수업을 다 듣고 온 학생도 있었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궁금해서 서울 유명 대학교 탐방을 다녀온 학생들도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깔깔거리고 연예인 이야기를 하던 철부지 아이들이, 찌부짜부 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나가 공을 차던 아이들이 어느새 "공부"라는 것을 우선으로 둔 채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


  "행복이 별거 없잖아. 근데 그 행복의 조건이 하필 학생에게는 성적이더라고. 그건 진짜야. 어른들이 너네 위로한다 치고 성적순이 행복순이 아니라고 하잖아. 다 개뻥이야. 생각해봐. 누구는 서울에 있는 대학 가는데 너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가. 그럼 우리 부모님이 뭐라 할거 같아?"

  "죽을래? 뒤진다." "넌 왜 그 모양이니. 뭐 될래?" 

  "그건 너무 극단적인데?ㅋㅋㅋ 샘네 부모님이 샘 지방에 있는 대학 갈 때 뭐라 했는지 알아? ㅋㅋ 혼자 가서 둘이 되서 오면 안 된데. 그러면서 선택한 건 너니까 네 인생 책임져라. 우리 아빠가 그랬지."

  "둘이 되서 오지 말래 완전 개현실."

  "나도 그때까지는 몰랐어.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거지. 행복이 성적순이라는 사실을. 근데 지방으로 대학을 가니까. 서울로 대학을 간 애들이 너무 부러운 거지. 개네들은 두꺼운 책 들고 지하철 타면서 미팅하면서 학교 다닐 거 아니야. 버스랑 지하철에서 번호도 따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면서 공부도 하고. 개부러운거지. 그리고 진짜 내 친구들은 내가 꿈꾸던 학교 생활을 하고 순탄하게 나가더라고. 그때 알았어. 적어도 학생 때 행복순은 성적순이구나. 대딩도 엄연히 학생이잖아. 아직은."

  

  순간 침묵이 흘렀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이토록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해 줄 필요가 있나를 고민했다. 그러나 내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그 어느 선생님들도 나에게 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20대는 나의 18살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렇기에 이 아이들에게만큼은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교사로서가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언니로서. 누나로서 말이다.


  "샘 그럼 우리는 지금 당장 행복해 지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거네요?"

  "뭐 우리 집이 개부자가 아닌 이상 대학은 가야겠네. 그지?"

  "좀만 참자. 이제 2년 남았어. 우리 행복해지자~"

  아이들끼리 건네는 그 위로가 그저 행복을 기다리기에, 꾸역꾸역 수학공식과 영어단어를 암기하는 현실이 씁쓸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샘 감사해요. 미리미리 알려주셔서."

  "샘은 좀 달라서 좋아요. 뭔가 개현실적. 그래서 가끔 왜 저러나 싶은데. 지나고 나면 샘 덕분에 약간 덤덤해진다고 해야 하나?"

  "저게 찐 사랑인 거야. 샘은 우리 진짜 사랑해서 저러는 거야.ㅋㅋㅋ" 


  행복의 나라를 살아가는 조건은 무수히 많다. 그 조건들 중에거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고 책임이다. 그것이 무언인지는 각자 저마다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저마나 행복의 나라에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생의 신분으로서 행복의 나라 조건은 아직까지는 성적순, 대학, 진로 등등이라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아직은 말이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스무살이 되었을 때 자신들이 꿈꿔왔던 이상과 너무 다른 세계에 놀라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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