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비로소 멈추는 ‘척’
#9. 마지막 장 :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 죽음 앞에서 비로소 멈추는 ‘척’
태어나서 우리는 수많은 ‘척’과 함께 인생을 살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그 ‘척’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인생의 끝자락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잠시 멈춰 선다.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우리는 다양한 ‘척’을 하며 살아왔다. 때로는 힘들었고, 때로는 즐거웠으며,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죽음 앞에 서면, 그 모든 것들이 이전만큼 크게 와닿지 않는다.
시기마다, 상황마다 애써 살아내느라 버거웠던 순간도 많았다.
좋았던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쯤에 이르러 굳이 “잘 살았는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해진다.
대신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어떤 ‘척’들과 함께 여기까지 걸어왔는지를.
10대 이전에는 작은 사회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연기,‘어린이인 척’을 했다.
아직 어린데도 어른에 가장 가까워 보이고 싶었던 10대에는
‘청소년인 척’을 했다.
20대에는 성인이 되며 자유를 얻는 대신,
책임을 흉내 내기 시작하며 ‘어른인 척’을 배웠다.
30대에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불안이 일상이 되었고,
설명할 말이 줄어들며 ‘괜찮은 척’으로 하루를 버텼다.
40대에는 사회와 가정 모두에 익숙해졌지만,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버티는 척’을 하며 살았다.
50대에는 이미 많은 걸 겪어봤다는 얼굴로
‘다 아는 척’을 하며 조언이 늘어났다.
60대에는 은퇴를 전후해 아직 놓지 못했으면서도,
놓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제는 내려놓은 척’을 했다.
그리고 70대 이후에는
몸은 느려지는데 마음은 더 또렷해지는 간극 속에서
‘괜찮아질 준비를 하는 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 앞에서 비로소 모든 ‘척’이 멈춘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순간을 살아내느라, 척과 함께 집중해 왔지만
이제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때는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
바쁘게 지나온 시절의 나에게 더 늦기 전에 던졌어야 할 질문.
“나는 정말 괜찮았을까?”
어쩌면 인생은 ‘척’을 없애는 여정이 아니라,
각 나이에 필요한 ‘척’을 배우고,
때로는 붙들고, 때로는 내려놓으며
다시 바꿔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아무런 척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