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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DOC Dec 29. 2020

묵은 얼룩을 닦았다

가난한 이는 발이 닿지 않는 물 위에서 떠오르려 애써야 한다. 하루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 반찬을 통으로 꺼내 먹는다. 한 끼를 위한 소분은 하지 않는다. 설거지 거리를 늘리고 싶지않다. 정신없고, 무미건조하고, 몸과 마음이 고단하고, 떠올리기 싫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잠을 잔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피할 수 없다. 그 모든 회피 행위가 무의미할 때 즘이면 내가 스스로 놓아버린 기회에 대한 후회, 타인의 동정에 의지해 살아가야 할 미래에 절망감을 느낀다. 분노나 슬픔처럼 힘이 많이 드는 감정 대신 타들어가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종종 담배를 피운다.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하나, 하나 포기하다가 청소도 하지 않는다. 옷은 널부러지고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있다. 바닥엔 머리카락과 먼지가 쌓여있다. 어지럽히기만 하는 공간.


외출이 줄어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방 한 칸의 작은 공간에 방치된 시간의 흔적이 가득하다. 이불을 빨고 옷을 걸었다. 쓸고, 닦고를 반복해 바닥이 제법 깨끗해졌다. 어지러운 물건들도 분류해서 정리했다. 전보단 나아졌지만 만족스럽게 정갈하지가 않다. 여기저기서 받아온 가구들 탓에 의자와 책상의 높이가 맞지 않고, 색이 다르고, 서랍 안에는 쓰지 않지만 아까워 버리지 못한 물건들도 그득그득하다. 벽지와 냉장고, 문에는 언제 어디서 묻었는지 얼룩과 때가 져있었다.


묵은 얼룩을 지우기 시작했다. 얼마간 박박, 문질러야 그제서야 지워졌다. 스며들어 변색된 표면이야 어쩔 수 없지만 얼룩이 사라졌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서랍을 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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