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DOC Jan 18. 2021

'그사세'를 목격했을 때

아는 사람 이야기

K는 음원 커버 프로듀싱을 받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필 또 그 날은 눈이 펑펑 와, 패딩이 축축해졌다고 한다. 바람도 세게 불어 귀가 시려웠다. 장장 두 시간을 걸쳐 이동하고, 십 분을 더 기다리고나서야 프로듀서를 만날 수 있었다. 미팅 장소는 신축 아파트 앞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금방 왔어요.


ㅇㅇ학교 학생이시죠?


아, 네.


과가 어떻게 되세요?


알고보니 K와 프로듀서는 동문이었다. 그것도 같은 학과. 하지만 딱히 안면이 있진 않았던 터라 할 말이 많진 않았다. 길이 좀 복잡하다느니, 간간이 어색한 대화만 오갔다. 지하 주차장을 한참 돌아다니고 엘레베이터를 타서야 녹음 장소에 도착했다. 아파트의 방 한 켠에 녹음 부스와 장비를 설치해놓았더라.


K는 집이 너무 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이 적어도 4개는 되어보이는데 짐은 거의 없었다. 동문이라는 친분의 힘을 빌려 녹음 부스의 초기 투자금을 물었고, 생각보다 금액이 컸다. 거기에 묻진 않았지만 사족이 붙었다. 이 넓은 집에 혼자서 산다고 했다. 그것도 전세, 월세가 아닌 매매로.


K는 눈 앞의 사람이 대체 어느정도 집안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는데, 실례라고 생각해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좌우지간 장장 3시간에 걸친 녹음을 시작했다. 같은 소절을 여러번 부르고, 약간의 수정을 더해 썩 듣기 좋은 소리로 만들었다. K는 녹음본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동시에 현재 자신의 한계임을 인정했다.


아파트를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아파트 단지 내부를 헤매며 K는 자꾸만 그의 집안을 가늠했다. 부모님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계시지? 무슨 일을 해야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아, 나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벌써 사업 비스무리하게 운영하는걸 보니, 여기서부터 격차가 나는구나. 그렇다고 억울하다거나, 서글프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는 그저 오늘의 일이 신기했다.


집에 도착해 몸을 녹이고서야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방과 화장실과 거실을 합쳐야 그의 거실 크기가 된다는 것을. K는 오랜만에 부모님에게 안부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리곤 집 정리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이른 시간 알람을 맞추고 일찍 잠들었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묵은 얼룩을 닦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