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려는 마음'을 읽고
분신한 후에 정신과 의사를 만났는데, 내가 사실은 아빠를 사랑했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나는 아빠를 미워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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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개인의 인격은 사람들의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주요 욕구들 중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 크게 영향을 받고, 결정된다고 한다.
부모님도 흠이 있는 한 사람이다. 한 개인이고, 인격체다. 그들 또한 완벽하지 않은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왔다. 설사 모든 면에서 완벽한 부모님 아래서 자란 자식이라도 그의 모든 욕구가 충족될 순 없는 법이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없다. 부모님과 자식의 관계도, 무엇보다 사랑으로 존재해야 할 관계도 그렇다. 천륜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아무리 상처를 많이 주고 받더라도, 그래서 증오해 마지 않더라도, 결국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가족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정할 수 밖에 없어요. 아빠가 죽은 다음,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그것에 대한 느낌은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아빠를 위해 낫다는 것을요. 아빠의 비참함이 끝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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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하려는 마음, 자살을 하고싶어하는 충동, ‘자살 경향성’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저자는 감정적 동요와 심리적 고통이 합쳐질 때 이러한 욕구가 충동으로 뒤바뀌며, 마침내 자살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살을 원하지 않는다. 단연코!
자살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동기와, 그들의 마음과, 아픔을 어찌 다 하나 하나 헤아리고 공감하고 분석할 수 있을까. 아래에서 말할 징후자의 기대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삶이 가진 ‘행복해질 가능성’을 송두리째 버리고 ‘죽음’을 고요하고 평안함으로 인식하는 마음은, 알 듯 말 듯 하다.
이 유서와 같은 편지를 남긴 환자는 분신 자살을 시도했지만 극적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3년 뒤 다른 질환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오발 사고 - 그녀의 어머니는 자살이라고 굳게 믿고있는 -로 죽고 나서, 고모로부터 아버지의 자살이 그녀와의 불화 때문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실제로 그녀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헛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 깊이 자살을 계획한다.
그녀의 가장 강력한 욕구는 의존과 양육이었다. 사랑으로 보듬어지기를 원했으나, 남자친구는 그녀를 성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착취했다. 아버지와도 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녀가 친구로 여겼던 지인들조차 그녀를 친구로 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버지를 잃고 난 후 그녀의 욕구는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충족된 적이 없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녀가 자살을 결심한 때는 흐느끼며 토스트기를 돌려주러 친구들에게 갔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걱정해주지 않았던 밤이었다. 그 때 그녀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어느 날 베트남 사람들은 분신 자살을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곤 자신도 그렇게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몸과 차에 휘발유를 들이붓고 성냥을 태우기까지, 모든 것이 고요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평안을 느꼈다. 고요함과 평안함.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불이 붙고나니, 분신은 그녀의 소망을 배신한다. 불이 타는 소리는 맹렬했고, 온 몸이 오그라드는 고통과 역겨운 기름 냄새가 감각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적막을 원했지만 그 순간 주위가 아주 시끄러웠다고 회상했다.
자살은 최후의 선택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부정당하고, 거부당하고, 어떠한 선택지도 없다고 생각될 때 무력함과 절망감을 느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이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슬프게도, 궁지에 몰린 이들이 보내는 신호란 ‘마술적 환상’에 가까워서, 주위 사람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술적 환상’의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분신을 위한 휘발유를 사면서, 주유소 직원이 그녀에게 안부를 물어주고 자살을 걱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치 마법처럼, 마술사처럼.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고독사는 정말이지, 비참하고 슬픈 죽음이다. 이 넓은 세상에, 수 많은 사람 중에 단 한 사람과도 연결되지 못한 채, 관계 맺지 못한 채, 도움 청하지 못한 채 홀로 죽어간다. 나는 사랑을 종용하는 모든 가르침에 경외감을 느끼고 감사하면서도, 많은 교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시들어가는 영혼들이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과 무기력함을 느낀다.
십자가가 나무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썩어가고 있었고, 산들바람에도 흔들거렸어요. 그래서 그냥 정말 근사하게, 진짜로 좋은 고전적인 묘비로 보였어요. 데이지 꽃들이 만발했고 풀들은 무덤 위로 길게 자라나 있었고요.
…
그러고 나서 멀리 그 묘지에서 새로 생긴 부분을 바라봤는데, 거기는 벌초가 돼 있었어요. 관리가 잘 돼있엇고 풀이 짧게 다듬어져 있었는데, 아주 부자연스럽고, 아주 잘못된 것처럼 보였어요.
…
사람은 살아서 통제하려고 하듯이 죽음이 올 때도 통제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자기의 죽음을 통제할 수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죽음에 관한 우리 느낌을 우리가 통제하려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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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Mother Nature, 자연'에 섞여들어가는 무덤과 인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무덤을 바라보며 상반되는 감정을 느낀다.
우연은 삶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맺은 사랑의 관계로 나는 태어났다. 그러니까, 나는 우연히, 사랑으로 태어난 것이다. 세상엔 사랑의 결과물이 너무도 많아,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만족함과 충만함이 있다. 꿈과 희망이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우연히, 흉작이 들고, 회사가 망하고,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져, 고통과 슬픔이 찾아온다. 아픔이 자리잡는다. 견디기 힘든 시련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우연한 기쁨과 슬픔은 동등하지 않나? 슬픔은 사람을 죽이지만 기쁨은 사람을 살게한다. 삶에 주어진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할 수 있기를. 무너진 관계들이 회복되고, 죽은 마음에 생기가 불어넣어지며,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한 줄기 희망과 곁을 지켜 줄 친구가 있기를 소망한다.
그녀는 깊은 땅의 평화, 삶과 죽음이라는 자연의 순환의 질서, 위대한 자궁의 피난처를 원한다. 그리고 그녀를 죽이려는 불이 말 그대로 그녀를 집어삼켰을 때, 그녀를 놀라게 하고 속상하게 한 것은 바로 그 시끄러운 소리였다. 그녀는 돌보는 사람 없는 묘지를 감싸는 고요를 추구했지만, 타오르는 불의 굉음에 완전히 배신당함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 자살을 계획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사람은 정말 아프고 사랑이 필요한 상태일 것이라, 문장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나도 어느정도 그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콤해보일지라도 가짜인 것이 있다. 자살은 평안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삶을 선택하기를. 당신에게 신의 보살핌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