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은 없어지고 누군가를 위해서 숙제를 하듯이 살아가게 되었다. 가정에서야 그렇다 쳐도 내 '일'을 하고 싶었던 나인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나의 생각을 전문성 있게 전달해야 하는 건데 어느 순간부터 거래처의 생각과 의견, 감정까지 고려해서 지레 겁을 먹으며 소통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맞춤형 세무대리인이 되어갔다.
거래처 사장님들의 주머니사정을 생각하고 세금을 줄이고 또 줄이고 물론 세법상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의 세액공제를 하는 건 맞지만 그 이상의 선을 넘을 때를 마주하거나 더 이상 소통이 무색하게 무조건 우기고만 보는 사장님을 마주할 때 나는 점점 영혼을 잃어갔고 일의 의미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적정한 세금을 책정하여 성실납세를 돕는 일을 하는 것인데 무조건 자기는 버는 게 없는데 왜 나라에 세금까지 내야 하냐고 목소리만 높이는 소위 말하는 진상을 상대하다 보면 그 업체와는 소통하기 전 전화번호를 누르는 순간부터 심장이 요동치고 움츠려든다. 그렇게 감정노동을 하면서 겨우 세금을 결정하고 기장료와는 별도인 조정료를 청구할 때 나는 다시 한번 좌절했다. 왜 이렇게 비싸냐는 말로 시작해 다른 사무실은 안 받는다는데 여긴 왜 받냐는 둥 나의 노동력의 정당한 대가를 후려치는 말속에서 내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고 그마저도 제때에 주지 않아 미수금이 쌓여가는 업체를 마주할 때는 울화가 치밀었다.
처음 몇 년은 맞서서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내 노력으로 실제로 개판이었던 미수율이나 기준 없이 후려치던 수수료가 조금은 안정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 맞서 싸우는 동안 듣게 되는 날 선 말들과 피드백은 나 마음을 생채기 내기 시작했고 나는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며 다독였지만 속으로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방치되던 상처들은 내 자신을 점점 갉아먹으며 더는 힘을 낼 자신감을 잃어갔다.
어느 날부터 조금 예민한 업체와 통화를 할 때면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있었고 조금의 언쟁이나 뭐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확인하기 전부터 땀이 나고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점점 나는 중심을 잃었고 자기 의심은 계속되고 작아지고 있었다. 이런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 줄 선배가 없었고 그래도 선임이라고 선임자리를 지켜야 했다. 선임노릇은 제대로 한 걸까? 내가 나의 후배였어도 나처럼 멘털 약한 선임이라면 믿음도 안 가고 든든함도 없었을 것 같다. 작은 사무실에서 작은 자리였지만 삼십 대의 나에게 내 자리는 너무나 외롭고 버겁고 힘들었다. 그렇게 작아지기만 하는 나에게 매달 찾아오는 본사 회의에서 숫자로 평가되는 날을 마주하고 늘 꼴찌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지점은 나를 더 하찮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성과가 없는 노력은 나를 우울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자꾸 억울해졌고 더는 한 발짝도 움직일 힘이 나지 않았다. 다른 지점 누군가와 자꾸 나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내가 나를 그렇게 평가하고 하루하루를 버티어갔다. 퇴근하면 아무 힘없이 누워있기 바빴고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함께 야식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텅 빈 마음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나? 나는 분명 열심히 했는데 왜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밤에는 자주 울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정엄마는 자주 아팠고 어느덧 살기 싫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나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