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기간이 6개월쯤 들어서면서 나는 조금씩 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아침에 각자 회사와 학교로 집을 나서고 저녁에 들어오니 하루 종일 혼자 나만의 시간을 원 없이 즐기면서 나는 그 많은 시간에 운동하고 책 읽고 집을 환기하고 다이어리를 쓴다. 특별히 어디를 가려고 하지도 않고 사람도 잘 안 만나고 혼자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심플한 내가 참 좋다. 혼자 잘 놀고 외롭지 않은 내가 참 좋다. 이제는 너무 다른 사람에게만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내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 내가 좋아졌다. 타인이나 가족보다 나를 먼저 챙기기 시작하면서 내가 점점 좋아졌다. 이제는 절대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남편이 쉬는 날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을 때 평소에 나라면 그냥 수락했을 테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한번 더 물어본다 정말 가고 싶은지.. 그런데 나는 영화 보러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막상 가서 보고 나면 잘 봤다며 괜찮긴 했지만 가기 전 망설임의 이유는 내가 굳이 영화 보러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영화관 자체가 소리도 너무 크고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조용히 도서관이나 카페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거나 다이어리를 쓰는 게 훨씬 좋다. 이런 나의 성향을 그동안은 모르고 단순히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를 싫어하는 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쉬면서 이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영화 보자는 제안을 잘 거절하고 혼자의 시간을 즐기러 카페에 간다.
은퇴하고 시간이 많은 친정아빠와 늘 몸과 마음이 아픈 친정엄마가 안쓰러워서 자주 만나고 커피도 사드리고 했지만 만날 때마다 듣게 되는 부정적인 말들.. 평생 후회 속에 사는 두 사람은 입만 열면 여기가 아프네 저기가 아프네 너무 늙었네 돈이 없네.. 등의 신세한탄을 쉴 틈 없이 쏟아낸다. 그런 한탄을 듣고 있자면 저 밑에 있는 우울함이 다시 불쑥 올라와서 나는 집에 와서 한없이 우울한 감정에 빠져버렸다.
전화는 어찌나 자주 하는지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그동안은 안쓰러운 마음에 참고 그들을 받아주었지만 나가 우울함이 생기고 아이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내 자신을 마주하니 더는 끌려다닐 수 없었다. 나와 내 가정을 지켜야 했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 거리 두는 과정도 물론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더는 참고 회피하지 않고 어느 정도 직면하면서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부모님과의 식사 자리도 거절하면 혹시 서운해하실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내 시간을 포기하면서 수락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줄이고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물론 매번 거절하지는 않지만 매번 수락하지도 않게 되었다. 나를 먼저 챙기기 시작하면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니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은 모두 타인이다. 가족도 타인이고 나는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는 이 사실을 나는 휴직기간 동안 혼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깨달았다. 그렇게 어떤 역할과 숙제하듯이 지냈던 날들을 조금 내려놓으니 나의 삶이 타인과 나 사이에 밸런스를 유지하게 되었고 나는 조금씩 회복하며 지금 시간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가 만족스럽고 내일이 기대가 되는 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