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보기로 하다.
이것만 다 끝내면 무조건 퇴사해야겠어라는 다짐을 수없이 하면서 나는 그래도 끝내는 것에 몰두했다. 몰아치는 일을 쳐내야만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포기란 없다.
모든 일이 비슷하겠지만 이건 도저히 기한 내에 못 끝낼 것 같아서 막막하기만 해도 기한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끝은 난다. 처음에는 끝이 있는 이 일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끝이란 없다. 어떤 실수로 인해 해명을 하고 수정신고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재수 없게 세무조사가 나올 수도 있다. 내가 한 일에 끝이란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실수를 하던 수정을 하던 그런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끝을 내는 게 중요했다.
이곳에서 나는 완벽주의를 버렸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디테일한 나의 업무스타일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았다. 디테일과 사소함에 신경 쓰다가 진짜로 못 끝낼 수도 있다.
세무사님이 그만두려는 나를 붙잡을 때 해주었던 "실수해도 괜찮아. 수정하면 돼."라는 말이 나의 완벽주의와 불안함을 잠재웠다. 그리고 어차피 이 바쁜 기간만 끝내면 나는 이곳을 그만둘 거라 이후에 나오는 실수나 수정은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도 한 몫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오랜만에 든 마음이었다. 마치 다시 신입이 된 느낌이다.
잊고 살았다. 내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참 힘들었지만 이런 열정이 있었다.
낯선 도시 종각역 큰 빌딩에 자리 한 사무실에 신입으로 들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일이 많은지 적은 지도 모르고 그저 해야만 하니 홀로 남아서 새벽 4시까지 믹스커피를 마시며 울면서 일하던 나였다.
경비아저씨가 왜 집에 안 가냐며 놀라며 건넨 한마디가 어찌나 서러웠던지.....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해낸 나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도망가려다 붙잡힌 만큼 일 년은 채우고 그만둬야겠다. 세무사님 말대로 바쁜 거 지나고 한가할 때 그만두던가 계속하던가 그때 가서 결정하자고 다짐한 만큼 내게 주어진 일은 해내자.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끝이 다가오니 정말 끝이 나버렸다.
결국 하니까 해냈다. 물론 생각보다 많이 힘들긴 했다. 쌓인 일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왜 이렇게 사건이 팡팡 터지는지..... 한탄하고 울고 혼자 욕하고 히스테리부리면서도 그래도 주어진 일은 다 했다. 이 일을 하면서 처음 접해보는 신고도 하게 되고 우여곡절이 참 많았지만 결국 6월 성실신고까지 끝내고 일 년 농사를 다 지었다. 7월에 오는 부가세 신고쯤은 발로도 하니까...
어쨌든 할 만큼 했다. 후회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