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와 태도의 문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선생님은 정말 좋은 복지사세요”라는 인사일지 모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감사함보다는 조심스러움을 먼저 느낀다. 왜냐하면, 그 ‘좋음’이라는 말이 무엇을 기준으로, 누구의 시선으로 주어진 것인지 항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사회복지사’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나 복잡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다. 친절한 사람?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 언제든지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이용자의 말에 무조건 공감해주는 사람?
현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고, 그들이 기대하는 ‘좋은 사회복지사’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때로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차갑다’는 평을 부르고, 때로는 마음을 다해 도운 일이 기대와 달랐다는 이유로 비난받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만을 덜 받는 사람’, 혹은 ‘사람들에게 잘 맞추는 사람’이 되려는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윤리를 지키는 사람’, ‘불편하더라도 옳은 방향을 안내하는 사람’이 아닐까.
특히 행정의 최전선, 지역복지의 현장에서 일할수록 사회복지사는 감정노동과 도덕적 판단의 경계에 놓인다. 사람을 향한 공감과 제도적 판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요구가 충돌할 때는 어느 쪽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입장에 서야 하기도 한다.
예컨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용자에게 제도의 기준을 설명하며 생활보호 신청이 어렵다는 사실을 전해야 할 때, 나는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걱정하게 된다. 냉정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내 감정적인 위로일까, 아니면 제도의 구조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실질적인 설명과 조정의 힘일까?
좋은 사회복지사는, 결국 ‘좋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을 접어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진짜 애정이란,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나는 한 어르신의 사례를 잊지 못한다. 의존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언행으로 사회복지사들을 힘들게 하던 분이었다.처음에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다가 관계를 망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 감정을 비워낸 채 그분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상실을 반복적으로 겪어왔는지를 조용히 듣고 나서야 관계의 실마리가 풀렸다.
그때 깨달았다. ‘좋은 사회복지사’는 항상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고통을 직면할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고통을 나의 감정과 섞지 않고, 그러나 외면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곁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평가는 늘 타인의 몫이다. 우리는 때로 과대평가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평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내 기준 안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있는가?
내 결정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가?
누군가의 인생을 건드리는 직업인 만큼, 나 자신을 점검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좋음’의 기준을 타인의 호불호가 아니라 전문성과 윤리, 그리고 태도의 일관성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충분히 좋은 사회복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