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나의 고유성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작고 불확실한 존재였다. 낯선 언어, 낯선 제도, 낯선 문화 속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지조차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의 상담을 맡고, 계획을 세우고, 행정서류를 작성하는 일들이 내게는 늘 “정답이 없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떠오르던 말이 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경험과 매뉴얼, 시스템이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어떤 체계도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순간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어떤 상담은 수십 분 만에 끝나고, 어떤 상담은 몇 개월, 몇 년을 이어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대단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태도와 말투, 존재 방식이다.
나는 외국인으로 이 현장에 들어왔다. 그 배경은 나를 늘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자격지심과 경계심 사이에서 흔들리게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와 마주한 자리에서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제 마음을 알아주셔서 좋아요. 다른 일본인 선생님한테는 말하기 어려웠어요.”
그때 알았다. 나의 이력, 나의 외국인으로서의 배경, 나의 불완전함까지도 누군가에게는 ‘이해받는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 이후, 나는 내가 가진 고유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복지 현장은 단순한 업무의 연속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의 삶이 있고, 삶의 복잡성과 예외성이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말 한마디, 상담 중의 침묵, 눈빛과 자세 하나까지도 그 사람만의 방식으로 해석되고 기억된다.
사회복지사는 그래서 자신만의 고유한 실천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흉내가 아니라, 자신의 말, 자신의 호흡, 자신의 원칙으로 상황에 맞서는 힘이 필요하다. 이 고유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수많은 실패와 반성, ‘이건 아니었구나’ 싶은 후회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진다.
어떤 날은 잘했다고 생각한 대응이 오히려 불신을 키우는 경우도 있고,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의 마음을 오래 짓누르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을 겪을수록 나는 더 단단해진다. 잘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더 신중하게 사람을 대하려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는 이제 이 일을 단지 ‘직무’로 여기지 않는다. 이 일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명확해질 때,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이 일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 자리가 작아 보여도, 그 자리를 지키는 방식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사회복지사는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질문하고, 함께 방향을 찾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매뉴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믿음, 그리고 진심이다.
나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어도 될까?”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그 자리에 기꺼이 서겠다.”
그것이 나에게 ‘내 일은 나만 할 수 있다’는 감각이고, 그 감각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작고 단단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