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경계 위에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이 일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잠시 말문을 닫는다. 무엇이라도 대답할 수는 있겠지만, 그 질문에는 단순한 동기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이 내게는 직업인가, 소명인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살아가는 이유이자 방식인가?
나는 이 물음 앞에 서면 매번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현장에서의 일상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사무실에서 쏟아지는 서류 작업, 조율되지 않는 관계, 답이 나오지 않는 사례회의, 이용자의 위기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긴장, 그리고 수많은 이해당사자 사이의 중재. 겉보기에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들이 하루하루를 촘촘히 채운다.
그러나 이 반복 속에, 문득문득,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위기에 처한 고령자가 병원을 연결받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가정이 주거를 확보하며, 돌봄에서 배제되어 있던 사람이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 그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내가 하는 이 일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구조의 일부라는 것을. 그렇기에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직무와 사명의 경계 위에 놓인다.
‘일’로만 하기엔 감정의 소모가 너무 크고, ‘소명’으로만 하기엔 제도와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일하는 나에게 이 경계는 더욱 선명했다.
언제나 조금은 낯선 존재로, 시스템의 주변부에서 중심을 향해 걸어가야 했기에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곧 ‘왜 여기까지 와서 이 일을 계속하는가’라는 질문과 겹쳤다.
초기에는 자격증 하나에 의지해 현장을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격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어의 벽, 문화적 오해, 행정의 복잡함, 이 모든 것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선 ‘나 자신이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면의 확신이 필요했다.
그 확신은 거창한 철학이나 사명감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눈물을 삼키던 어르신의 손을 잡아드리며 생겼고, 또 어떤 날은 이용자의 말 한마디, “당신 덕분에 안심했어요”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 일을 하며 자주 의심한다.
정말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이 결정이 옳은 방향일까?
내가 한 말이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그러나 바로 이 의심, 즉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있는가’를 계속해서 묻는 태도가 사회복지사의 윤리를 지탱하는 내적 동력인지도 모른다.
일과 소명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일로 시작했지만 소명이 되기도 하고, 소명이라 믿었지만 일로 환원되기도 한다. 나는 이제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걷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과로하지 않기 위해,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동시에 냉소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두기와 몰입의 균형을 조절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않으려 한다. 이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를. 단지 누군가를 도와서가 아니라, 이 일을 통해 나 자신이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했기 때문에.
어떤 날은 일에 치여 지쳐버리지만, 그래도 다음 날 다시 현장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단순한 책임감이 아니라, 이 일이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복지사다. 누군가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지탱하는 일,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나에게 이 일이 주는 가치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된다. 그 다리 위에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이 길이 비록 좁고, 고되고, 때로는 외롭지만 그 길 끝에서 마주치는 한 사람의 회복된 얼굴을 위해,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